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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30. 2022

환기 대신 온기

-231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여는 것이다. 비가 오거나 하지 않는 이상 가급적 활짝 연다. 여름에는 그대로 몇 시간이고 두었지만 요즘은 날씨가 추워져서 아침 정리를 하는 20분 남짓밖에는 열어두지 못한다. 그래도 그 20분의 환기는 대단한 리프레시 효과가 있다. 조금 전까지 계속되던 어제가 비로소 끝나고, 이제야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인 것처럼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무리였다. 오늘 아침, 나는 시간 맞춰 잠에서 깨고도 도저히 이불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근 30분을 꿈지럭거렸다. 그런 끝에 마지못해 일어나 안쪽 창문을 열어보니 바깥쪽 유리창에 김이 뽀얗게 서려 있었다. 그리고 이미 알 수 있었다. 오늘 날씨가 대단히 춥다는 것을. 그건 어제 오후쯤부터 몇 통 연달아 온 한파경보 문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그 어떤 것에 가까웠다.


어제 나는 그가 떠나간 후 처음으로 보일러를 틀어놓은 채 잤다. 아직도 내게는 오직 나 하나를 위해 보일러를 튼다는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필요해서,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다고 하니 외출 시에는 보일러를 약하게라도 틀어두시라는 관리사무소의 안내 문자 핑계를 댔다. 그 덕분인지 오늘 아침의 집 안에는 적당한 온기가 따스하게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대수롭지 않은 온기는 창문을 여는 순간 순식간에 날아가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창틀에서 손을 떼고 고스란히 뒤로 물러났다. 오늘 환기는, 생략. 어차피 혼자 있는데 공기 좀 더러워져 봤자 그거 내가 한 거지 다른 누가 한 것도 아닐 테고. 그런 구구절절한 핑계를 대고.


어제 몇몇 지방에서는 이미 첫눈도 온 모양이다. 내가 사는 곳도 그리 눈이 드문 곳은 아니니 조만간 첫눈이 내리겠지.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눈을 좋아하지 않게 되긴 하지만, 그래도 첫눈이 오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좋아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기억이 있다. 우리도 그랬다. 둘 중의 누구 하나가 창문 너머 눈발이 내리는 것을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르면 다른 하나도 하던 일을 팽개치고 달려와 같이 창문 너머로 눈 내리는 모습을 바라봤다. 올해도 그 눈은 똑같이 내리겠지만 이제 내게는 같이 그 눈을 보고 탄성을 질러줄 사람은 없다. 순식간에 거기까지 생각이 달려버리고 나니 나는 그지없이 쓸쓸해졌다.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났는데 이 구멍은 메워질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남은 나날 내내 나는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 나도 모르게 붉어진 눈가를 손등으로 문지르며 오늘도 나는 하릴없이 그런 생각이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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