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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01. 2022

안 되는 일도, 있다

-232

그가 내게 가졌던 불만 중의 하나는 내 성격에 관한 것이었다. 너는 가만히 보면 되게 매사를 귀찮아하고 되도록이면 일 벌이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지상과제인 것 같은 성격인데 그런 주제에 한 번 꽂히면 옆에 있는 사람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버라이어티한 일을 눈도 깜짝하지 않고 순식간에 벌인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너무 정확한 말이라 뼈가 다 아픈 지적이었다.


그러니까 요컨대, 오늘 아침에도 그런 내 성격이 발동해 조금 전까지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이제야 글 한 줄 쓸 시간이 났다는 그런 이야기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따뜻한 이불속을 빠져나가기가 싫어 눈을 뜨고도 한 30분 정도를 꿈지럭거렸다. 켜 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아 어제 아르헨티나가 이겼구나. 그렇지만 멕시코가 골득실에서 뒤져서, 폴란드는 지고도 16강에 올라갔구나. 메시도 레반도프스키도 둘 다 한 라운드 더 가는구나. 그런 등등의 생각을 했다. 그렇게 양껏 꾸물거리다가 일어났다. 오늘은 침구를 다 걷어다가 털어서 다시 까는 날이다. 그것만으로도 평소의 아침 정리보다는 조금 스펙이 커질 예정이었다. 시트며 토퍼를 하나하나 걷어내다가, 문득 매트리스 뒤집은 지가 반년도 지나지 않았던가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는 철이 바뀔 때마다 매트리스 커버를 갈면서 매트리스를 뒤집었다. 매트리스를 그대로 놓고 오래 쓰면 같은 자리에 계속 하중을 받아 매트리스가 내려앉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침대 매트리스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그래서 그 매트리스를 그냥 앞뒤 정도 뒤집는 것이 아니라 앞뒤와 상하좌우를 완전히 한 번 뒤집을 때마다 그와 나는 이마로 식은땀이 바싹 돋을 만큼 진땀을 야 했다. 그 짓을, 나는 오늘 나 혼자서 해 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매트리스 커버를 벗기고 매트리스를 침대 프레임 바깥으로 어찌어찌 끌어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 나는 매트리스의 말도 안 되는 무게와 뻣뻣함, 완고함에 가로막혀 옴쭉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밀고 당겨 세우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이걸 도대체 어떻게 상하좌우를 바꾸어 뒤집어놓아야 할지, 과연 그게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한지, 나는 아무래도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늘 내가 하던 식으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 보자고 달려들었다가 정강이를 두어 번 부딪히고 손등이 쓸리고 나서야 나는 이게 도저히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곱게 매트리스를 원위치하고, 커버만 바꾸어놓는 것으로 요즘 말로 '스불재'인 오늘의 난리법석을 적당히 수습했다. 그러느라고 오늘 아침 시간을 다 까먹고 말았다.


그가 떠나간 후 많은 일이 있었고, 나는 혼자서 어떻게 어떻게 그 일들을 수습해 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 혼자서는 힘에 부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있게 마련이겠지. 그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안 되는 일에 괜히 용쓰지 말라고, 그라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매트리스? 그냥 몇 년 더 쓰고 새 걸로 사라고. 너는 늘 그게 문제라고. 한 번 꽂히면 옆에 있는 사람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버라이어티한 일을 눈도 깜짝하지 않고 순식간에 벌인다고. 그냥 하던 대로, 적당히 귀찮아하면서 살라고. 그게 덜 지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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