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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02. 2022

양파가 매워서

-233

본의 아니게 1일 1식을 하게 된지도 7개월을 넘어 좀 있으면 8개월째가 된다. 그 사이 내 체중은 앞자리가 두 번이 바뀌었다. 하루에 한 끼 정도를 먹고도 그럭저럭 살아질 만큼, 내 일상은 그렇게나 별 것 없고 조촐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먹는 양을 줄이다 보니 가끔 오후쯤 견딜 수 없는 출출함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생각건대 그건 정말로 배가 고파서라기보다는 뭔가 있던 것이 사라져 버린 허전함에서 기인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정점을 찍은 것이 어제였다.


발단은 어제도 아닌 그제, 밤 10시도 넘은 시간부터였다. 그야말로 뜬금없이 비빔국수가 먹고 싶어진 것이다. 미쳤냐는 소리를 스스로에게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밤 10시도 넘어 비빔국수를 끓여먹는 짓은 그가 있을 때조차도 하지 않던 짓인 데다가 이 추운 날씨에 찬물에 삶은 면발을 빠는 짓을 해 가면서까지 그 비빔국수라는 걸 꼭 처먹어야 직성이 풀리겠느냐고, 나는 연신 엉덩이가 들썩거리려는 나 자신에게 온갖 매도를 퍼부으며 억지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이 때아닌 비빔국수에 대한 식탐은 무사히 지나가는 듯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게 꼭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제 하루 내내 비빔국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를 않았다. 결국 나는 이 때아닌 탐욕에 승복해, 어제 오후쯤에 비빔국수를 끓여먹었다. 그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주문한 물건들 중에 소면이 한 봉지 있었다. 도대체 이 물건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 반년 넘게 뜯어보지도 않던 것을, 어제 처음으로 뜯어 면을 한 줌 꺼냈다. 고명으로 얹을 만한 채소라고는 양파뿐이었지만 뭐 어떠랴 싶었다. 냉장고에 든 것들 중에 제일 작은 양파 하나를 꺼냈다. 이걸 반절 남겨놔서 뭐에 쓰겠냐 싶어서 호기롭게 한 개를 다 썰어 레시피에서 시키는 식으로 찬물에 담가 놓고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설탕 참기름에 매실청까지 섞어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그가 있을 때도 소면 삶는 건 내가 했으니 늘 하던 대로 국수를 삶아 체에 받쳐 헹궜다. 삶은 국수에 양파를 얹고 양념장을 붓고, 그 위에 통깨까지 조금 뿌렸다. 보기로는 제법 그럴듯한 비빔국수가 되었다.


다만 문제는 양파의 양이었다. 워낙 작은 양파여서 한 개 다 넣어봤자라고 생각했는데, 1인분과 2인분의 대중이 다른 탓인지 그릇에 담자 무슨 비빔국수가 아닌 비빔양파처럼 보였다. 뭐, 상관있냐. 어차피 내가 먹을 건데. 책상으로 가지고 와 한 젓가락 먹어본 국수는 내가 끓인 것치고는 그럭저럭 쓸만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양파였다. 양파가 너무 매웠다. 분명 양념장을 만들고 국수를 삶는 동안 찬물에 담가놓았지만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가 않았는지, 양파 특유의 아린 맛이 올라와 입 속이 얼얼해졌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설탕과 참기름을 조금 더 넣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차마 버릴 엄두가 나지 않아, 나는 미련스레 그 맵고 아린 양파를 꾸역꾸역 다 먹었다. 그리고 그 끝에 기어이 눈물을 쏟았다. 그가 해주던 비빔국수 맛이 생각나서였는지, 그 맛과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이 국수인지 양파인지 모를 것의 맛이 너무 비교되어서인지, 이제 다시는 그 국수를 먹어볼 수 없겠다는, 이럴 줄 알았으면 해 줄 때 좀 더 맛있게 먹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와서였는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냥 양파가 매워서였는지도 모른다. 그 돌콩만한 양파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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