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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04. 2022

12년이 지났는데

-235

어제는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다가 SNS에 오른 어떤 짤막한 글 하나를 보고 심장이 미어져서 한참을 그 자리에 굳어져 있었다.


고양이 떠난지 12년 됐는데 아직도 겨울옷 털면 가끔 흰 터럭 하나씩 어디선가 나온다



12년이 지났는데, 고양이의 흰 털은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아직도 한 가닥씩 나온다고 한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게 마지막 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찾으면 이미 사라지고 없다고. 사람의 손톱 발톱 조각을 주워 먹은 쥐는 사람의 형상으로 변한다는데, 고양이들이 간다는 무지개다리 너머 고양이별에는 침대 아래 어느 구석으로 튀어 들어간 집사의 발톱 조각을 주워 먹은 쥐 인형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변해서 고양이들의 냥냥펀치에 대신 맞고 있는 게 아닐까요. 대충 그런 글이었다.


순간 그냥 모든 사고가 회전을 멈추어서, 한참을 울었다. 예전에, 제 앞가림하겠다고 객지로 떠나 설 추석 두어 번이나 겨우 집에 오는 무심한 딸이 며칠 집에 있다 돌아가면 한 달이 넘도록 방을 쓸고 닦을 때마다 길다란 머리카락이 나와서, 그걸 볼 때마다 운다던 어느 어머니의 말씀도 생각났다.


나는 둔하고 눈썰미도 퍽 없는 편이다. 그래서 그의 머리카락과 내 머리카락이 섞여있어도 잘 구분해 내지 못할 것 같다. 그가 떠난 후 나는 몇 올이나 되는 그의 머리카락을 그게 그의 마지막 흔적인지도 모르고 청소기로 쓸어서, 혹은 걸레로 훔쳐서 내다 버렸을까. 아니, 저 글을 쓰신 분은 12년이 지나도 어딘가에서 자꾸만 고양이 털이 나온다고 하셨으니 이 집에서만 12년을 살았고 떠나간 지 반년이 조금 지난 그의 머리카락은 아직도 어디선가 계속 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난 그게 그의 흔적인 걸 모르고 구시렁대고 투덜대며 하나하나 주워다가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날이 추워진 탓일까. 부쩍 별로 크지도 않은 집이 넓게만 느껴진다. 아니, 날씨 같은 걸 탓하는 건 그냥 비겁한 핑계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에, 내 인생에 나 버린 구멍은 도저히 메울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것이어서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뭔가로 가려도, 뭔가로 막아도 그 구멍으로 들이치는 찬바람은 도저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생명 하나를 떠나보낸 지 12년이 지난 분도 저런 글을 쓰시는데, 이제 겨우 반년 조금 지난 나 따위가 아직도 마음이 쓰라리고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각오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내 마음은 아마도, 이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아플 것이기에. 언제쯤 되면 괜찮아질까.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정답없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뿌옇게 김이 서린 유리창을 보면서 해본다.




(이 글에서 인용한 글은 트위터 표본실의 잡초님의 12월 1일 자 트윗입니다.

https://twitter.com/weedmasterlab/status/1598090395241844744?s=20&t=BtGB-VHuPGYgawiG6--XKQ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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