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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05. 2022

김밥은 꼬다리가 맛있다지만

-236

김밥을 먹을 때면 살짝 바보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한 예능인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촬영을 하던 중 사람들과 함께 김밥 등을 먹게 되는 일이 잦은데 가운데의 예쁘게 잘려진 부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이 끄트머리 부분을 집어먹곤 했더니 어느 날인가는 사람들이 그 끄트머리 부분만을 잔뜩 모아서 '너 이게 좋아하잖아'하면서 내밀더라고 했다. 그 순간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잠시 당황했었다고.


우리 집에서는 그와 나 사이에 그 비슷한 일이 종종 일어났다. 나는 입이 작은 편이어서 뭔가를 한입에 담뿍 집어넣고 우물우물 먹는 것을 잘 못하는 편이다. 그런 나를 위해서, 그는 크게 잘라진 데다 아무래도 옆으로 재료들이 튀어나와 있게 마련인 꼬다리 부분을 자신이 다 먹고 가운데 얇고 예쁘게 잘라진 김밥들은 죄다 나에게 양보했다. 그러면서 늘 한 마디 덧붙이곤 했다.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김밥은 원래 꼬다리가 맛있는 거야. 하여튼 그 나이를 먹고 김밥 먹을 줄도 모른다니까.


그 말을 백 퍼센트 전부 믿지는 않았다.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 또한 같이 김밥을 먹을 때면 꼬다리 부분의 김밥을 슬그머니 그에게로 밀어주곤 했었고 그는 또 아무런 불평도 불만도 없이 그 김밥들을 주는 대로 먹곤 했었다. 문득 생각한다. 그 순간의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잘라진 꼬다리만 모은 김밥을 받은 그 예능인 같은 기분은 아니었을까.


어제는 점심때 비빔면 하나를 끓여서, 종종 사 먹는 계란말이 김밥 한 줄을 사다가 같이 먹었다. 그가 없는 지금, 나를 위해 꼬다리 김밥을 먹어주는 사람 따위는 당연히 이 세상에 없다. 두툼하게 잘라진 꼬다리 부분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나는 그 예능인을 생각하고, 그에게 김밥의 꼬다리 부분만을 모아다 줬다던 그의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고, 나를 위해 묵묵히 김밥의 꼬다리 부분만을 집어다 먼저 먹던 그를 생각하고, 슬그머니 그에게 김밥의 꼬다리 부분을 밀어주던 나를 생각했다. 사람이 얼마나 무뎌지기 쉬운가를 생각한다. 사람이 얼마나 저 좋을 대로만 생각하기 좋아하는지를 생각한다. 분명 그 예능인의 일화를 듣고는 사람들 참 너무한다며 분개해놓고, 정작 내 옆에 존재하는 사람에게 나 또한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이런 식의 깨달음은 언제나 한 박자 늦게 와서, 그게 참 안됐다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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