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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08. 2022

방향의 문제

-239

내게 일어난 일을 알고 계시는 몇 안 되는 주변의 지인 중에 종교를 가져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시는 지인이 한 분 계신다. 할 만한 권유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마음을 너무 건사하기가 힘들어서, 뭐가 됐든 좋으니 종교를 가져볼까 하는 고민을 한동안 꽤나 심각하게 했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가끔 그분의 권유가 단순한 권유 정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가끔 그분에게서 연락이 온다. 김치를 좀 담갔는데 갖다주고 싶으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신다. 이쯤에서 나는 당황한다. 그분을 믿지 못한다거나 그분이 내게 뭔가 해코지를 할 것 같다거나 해서가 아니다. 주소를 오픈하고 내왕한다는 것은, 나 같은 내향적 인간에게는 사람에게 가지는 거의 모든 종류의 장벽을 해제하고 그 사람을 내 바운더리 안에 들인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필사적으로 온갖 핑계를 짜내 사양한다. 사양해 놓고 나서도 한동안, 나를 생각해서 선뜻 그런 호의를 베풀어주시는 분의 마음을 매몰차게 거절한 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으로 한동안 괴롭다. 그러나 그 죄스러운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분은 또 다른 이유를 대며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신다. 가끔 찾아가서 커피도 한 잔씩 얻어마시고 그러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이 그분의 말씀이다. 나는 여기서 다시 당황한다. 그래서 또 이런저런 다른 화제로 말을 돌리며 상황을 회피한다. 벌써 몇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다.


그는 내가 가진 거의 모든 인간관계였던 것이 사실이다. 일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나는 그가 갑작스레 내 곁을 떠나면서 대부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몇 번 그런 부분에서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게 그분에게는 마치 내 생활에 비집고 들어와도 된다는 사인으로 읽혀지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분이 자꾸만 권유하시는 종교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사람이 백 살까지 사느니 못 사느니 하는 시절에 그 절반도 못 살고 그가 나를 떠나야 했던 이유를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나에게 그 모든 것이 신의 섭리라는 대답은 가끔은 황당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끈 떨어진 연처럼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고, 그래서 마음을 붙들 뭐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모든 것이 신의 뜻이고 사랑이라는 식의 말을 몇 마디 듣고 있다 보면 사춘기 아이 같은 반항심이 치밀어 오르는 건 내가 아마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며, 나는 그 분과 조금씩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내가 바란 건 그냥 냉수 한 잔 정도의 호의였을 뿐인데 자꾸만 십전대보탕을 끓여서 주시려는 그 분과. 나는 지금 목이 마르고, 그래서 목을 축일 물 한 잔 정도면 충분한데 자꾸만 몸이 허해 보인다며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을 내주시려는 그 분과. 옆에 사람이 없이 외롭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그 와중에 이런 식으로 사람을 고르고 있다니, 이게 무슨 배부른 짓인가 싶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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