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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14. 2022

함께 겨울을 살기

-245

날이 춥다. 요 며칠 새 늘 그랬지만, 오늘은 정말로 온기가 퍼져 따뜻한 이불을 걷어치우고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워 베개에 머리를 처박고 한참을 끙끙거렸다. 어제는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눈이 내리더니, 오늘 아침엔 날은 깔끔하게 개었지만 그 덕분에 새파란 하늘에 내리쬐는 햇살 한 줄기가 더 춥게 느껴진다.


나 하나의 겨우살이만도 버거운 와중에, 나는 내가 지난봄에 들여놓은 화분 두 개의 첫 겨울나기 때문에 혼자서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는 중이다. 다육이도 무화과도 둘 다 추운 시절을 잘 견딜 것 같은 녀석들이 아니다. 집사가 노련하다면 또 모르겠지만, 나 같은 얼치기 집사가 과연 이 두 녀석을 데리고 무사히 겨울을 지날 수 있을까.


다육이의 경우는 사실 일부러 깊은 정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다름이 아니라 분을 간 것이 나였기 때문이다. 워낙에 이런 일에 문외한이기도 하거니와 뭘 하듯 뒷손이 많이 가고 꼼꼼하지 못한 나 자신을 나는 별로 신뢰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렇게 멀쩡한 듯 잘 살아있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시들시들해져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건 백 퍼센트 내가 한 분갈이가 문제여서 분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일 거라고. 그러나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다육이는 8개월째 내가 어설프게 분을 갈아준 화분에서 꿋꿋이 잘 살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젠 옆가지까지 제법 만들고 있다. 이렇게까지 지났으면 이젠 뿌리를 내리고 말고를 걱정할 시기는 조금 지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가을 무렵 열매까지 하나 맺었던 무화과는 요즘 아닌 게 아니라 눈에 띄게 생기가 없다. 커다랗고 빳빳하던 이파리 끝부분이 조금씩 거뭇거뭇하게 변하는 것이, 날이 추워졌으니 으레 그러하겠거니 생각은 하면서도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무화과는 태생이 지중해 쪽의 따뜻한 곳이라 추위에 유독 약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듣고 둥치를 보온재로 감아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꽤 심각하게 했었다. 그러나 꽃집 사장님은 그 말을 듣고 웃으시더니 그건 노지에서 키우는 나무들 얘기고, 사람 사는 실내에 들여놓고 찬바람 직접 안 맞힐 거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도 마음이 편치 않아 볕 좀 쬐라고 창문을 닫은 창가에 갖다 놓으면서도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외풍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 몇 번이고 화분을 내다 놓은 창가를 기웃거린다.


겨울은 이제 겨우 초입이고, 모르긴 해도 내년 2월까지는 넉넉하게 계속 춥기만 할 텐데 그때까지 두 달 반 가량을 내 앞가림도 아직 잘 못하는 내가 이 녀석들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까. 오늘 아침, 무화과에 물을 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미 내 곁에 살던 사람 하나를 너무나 갑작스레 떠나보냈고 웬만하면 내 곁에서 살던 것을 또 그런 식으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도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겠지. 식물영양제 같은 거라도 좀 사다가 하나씩 줘볼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그래도, 그가 떠나간 허한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내 마음을 많이 달래주고 있는 고마운 녀석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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