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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15. 2022

신데렐라는 4강까지만

-246

징크스라는 건 어쩌면 일종의 빅데이터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그는 말한 적이 있었다. A인 경우에 통상적으로 B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들이 쌓이고 쌓여서 A 하면 반드시 B 하더라 라는 식의 징크스로 굳어지는 게 아니겠느냐고. 월드컵의 징크스 또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어느 월드컵이든 반드시 '미친' 팀이 하나 나오고, 그러나 그 팀은 대개 4강이 한계일 뿐 결승에 가거나 우승을 하지는 못한다고. 2002년 월드컵 때의 우리나라가 그랬듯이 말이다. 마치 축구의 신이라는 게 정말로 있어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한 팀에게 마법을 걸어주고, 그러나 4강이 오면 응, 너는 거기까지야 하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저 말은 근거가 없을지는 모르지만 대충 맞았다. 그래서 나는 준결승의 한쪽 승자가 아르헨티나로 결정되었을 때 내심 이번 결승은 아르헨티나 대 프랑스, 메시 대 지루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역시나 그랬던 모양이다. 보면 볼수록 2002년의 대한민국 대표팀을 떠올리게 하던 모로코는 4강에서 발목이 잡혀 결승전 대신 3, 4위전으로 가게 되었다.


대개 월드컵 결승전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우리나라 속담대로 지루한 공방전 끝에 겨우 한 골로 승부가 나거나 아니면 정 반대로 예상외의 일방적인 승부가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 경기 하나에 너무나 많은 것이 걸려 있기에 '재미있고 화끈한 축구' 따위를 구사할 여력은 없어서 그럴 것이다. 반면에 3, 4위전은 누가 3위를 해도 좋은, 이젠 정말로 모든 걸 내려놓은 두 팀의 그야말로 라스트 댄스가 될 것이다. 그래서 대개 월드컵에서 가장 재미있는 경기는 결승전이 아니라 3, 4위전이라고 그는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몇 번의 월드컵을 돌이켜 보아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이제 신데렐라가 돌아가버린 결승전에는 전 대회 우승팀과 레전드의 은퇴 길에 월드컵 우승을 바치겠다는 팀이 남았다.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2연패를 한 팀은 없다는 '빅데이터'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리고 사실 나는 메시가 은퇴하기 전에 우승컵을 한 번 들어보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늘 그렇듯 공은 둥글고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겠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이기는 놈 우리 편이라는 속 편한 마음으로 남은 두 경기를 지켜보면 될 것 같다.


간만에 나에게 텔레비전 보는 즐거움을 돌려준 월드컵은 이제 겨우 두 경기만 남았다. 월드컵이 끝나면 나는 어떻게 할까. 다시 지나간 방송 vod 속으로 되돌아가 그 속에 웅크리고 앉은 채 이 긴긴 겨울을 보내게 될까. 아니면 이왕 한 발 디딘 김에, 조금씩이나마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텔레비전 너머로나마 지켜볼 수 있게 될까. 아직은 모르겠다. 때가 되면, 다 되겠지. 그냥 그렇게 속 편하게 생각해 버리기로 한다. 부단히 동동거리고 애를 쓰지 않아도 결국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하더라는 것 역시도 하나의 빅데이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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