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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17. 2022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248

벌써 며칠째, 새벽 네 시 무렵 잠에서 깨서 한 두어 시간을 뒤척이다가 다시 잠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수면 패턴이 본의 아니게 조정된 후로는 별로 없던 일이어서 조금 당혹스러워하는 중이다. 켜 놓고 잠드는 텔레비전의 소음 때문일까.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로 잠든 것이 지난 반년도 넘었으니 이제 와서 그 이유를 대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혹은 원래는 이러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뭔가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 때, 나는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진다. 잘못되었다, 혹은 평소와 다르다는 식의 감각으로 따지자면 요즘의 내 일상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궤도에서 이탈해 삐걱거리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 밥 먹는 시간과 메뉴들, 먹는 음식의 양과 질들, 하루를 보내는 방법, 외출하는 스케줄 등등 모든 것들이.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식의 위기감을 파고들면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그래서 나는 그만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원래의 내 삶은 어떠했던가. 지금의 내 일상은 거기서 얼마나 뒤틀렸는가. 나는 과연, 그 '원래'로 돌아갈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면 어느 정도 선까지 타협해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그 '원래'라는 것이 이제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기는 하는 것인가.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에 대한 답을, 나는 거의 하나도 내놓지 못한다.


그 와중에 더욱 괴로운 것은 지금 내 삶이 어딘가 정상에서 벗어나 있다고 끊임없이 경보음을 보내는 내 머릿속의 내비게이션이다. 마치 제가 세팅해 둔 최적경로를 벗어나버린 운전자에게 귀가 아프도록 띵띵거리는 경고음을 내며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하고 앵무새처럼 조잘거리는 내비게이션 하나가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가끔 든다. 지금 내 일상은 어디까지나 '비상상황' 하에서의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고 안정되면 언젠가 '원래'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식의. 그러니까, 그 원래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그 없이 나 혼자서 예전처럼 사는 게 가능한지, 그럴 수 있는 건지, 그런 질문들에 대한 찾을 수 없는 답과 맞물려 지금의 내 일상이 어딘가 뒤틀려 있다는 위기의식은 가끔 나응 참으로 진 빠지게 한다.


언젠가 때가 되면 내 머릿속의 내비게이션도 분위기 파악을 하겠지. 그와 함께 걸어가던 내 인생의 궤도는 이제 영영 틀어져 그 길로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경로를 재탐색'하지 않을까. 하루에 한 끼를 겨우 대충 먹고 새벽이 되기 전에 잠들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삶에도 적응하지 않을까. 그러나 정작 그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이탈했다는 경고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내가 그를 완전히 떠나보냈다는 뜻이 되는 것일까. 나는 그 허전함을 견딜 수 있을까. 그 죄책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홀로 서기에는 나는 아직도 너무나 모르는 게 많고, 너무나 무서운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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