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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23. 2022

이젠 날씨 좀 풀릴 때도 되지 않았나

-254

학교 다닐 때 분명히 우리나라 겨울 날씨의 특징으로 3한 4온이라는 말을 배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요즘은 그게 다 무슨 말이냐 싶다. 유독 날씨에 민감한, 처음으로 맞는 혼자 지내는 겨울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올해 겨울은 내 기분으로는 12월이 들면서부터 한 번도 풀린 적은 없고 내내 춥기만 했던 것 같은 기분이다. 심상치 않은 알림음에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날씨가 추우니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수도관 및 보일러 동파에 주의하라는 내 생활권에 인접한 지자체들이 보낸 알림 문자들이 와 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제저녁엔 자려고 이불까지 덮고 누웠다가 내일도 오지게 춥다는데 수도관이라도 얼어붙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기어이 나가서 수돗물을 아주 조금 틀어놓고 들어왔다. 수도관 동파라니 그건 따로 덜렁하니 있는 단독주택들 얘기라고 그는 웃으며 말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그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이 마음의 여력 없는 와중에 수도관까지 말썽을 부린다면 그 자리에 퍼져 앉아 어린애처럼 엉엉 울어버릴 것 같다. 그러느니, 조금 삽질이더라도 차라리 물을 틀어놓고 자는 편이 낫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핸드폰에 의하면 오늘의 최저 기온은 영하 14도. 체감으로는 영하 22도. 내일도 비슷하다는 모양이다. 뭐 어쩌겠다는 거야. 겨울 내내 이 패턴으로 계속 추워보겠다는 얘기냐고, 한참이나 애꿎은 핸드폰 액정 화면을 노려본다. 날씨가 추워진 것이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갑자기 유난을 떠는 이유는 내일쯤엔 그를 만나러 봉안당에 다녀올 생각이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이란 늘 이런 식으로, 제 일이 되지 않으면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다는 조로 세상을 살게 마련인 모양이다.


지난여름엔 그가 살펴준 덕을 많이 봤다. 한 달에 한 번씩, 무슨 일이 생기면 간헐적으로 봉안당에 쫓아다니는 동안 비를 맞은 적은 딱 한 번뿐이었다. 그 외에는 비가 오다가도 그쳤고, 날이 덥다가도 구름이 끼어 해를 가렸다. 고마운데, 이런 거 참 고맙긴 한데 이런 거 하지 말고 그렇게 도망가지 말지 그랬느냐고, 그런 원망 섞인 투정을 그의 얼굴을 보고 버스를 타러 비탈길을 내려가며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때 어렴풋하게 생각했다. 아, 이 길 겨울에 눈 올 때 오려면 고생 좀 하겠는데. 그러나 그건 '아주 먼 나중의 일'이었고 '지금 당장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꾸역꾸역 흘렀고, 나는 이제 내일 당장 그 비탈길에 눈이 얼어붙어 엉망이 되어 있으면 어떡할지, 내일 내가 나갈 때쯤엔 과연 온도가 몇 도나 될지를 고민하고 있다.


잘못 산 주식 그래프마냥 하염없이 처박히기만 하는 이번 주 예상 온도를 보며 그에게 어떻게 좀 안 되겠느냐고 장난 삼아 징징거렸지만, 거기 간 지 반년 겨우 넘긴 짬밥으로 거기까지는 무리인 모양이다. 이쯤에서 나는 그냥 곱게 포기하고, 내일도 영하 14도에 달한다는 아침 한파를 뚫고 그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딘지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혼자 떠나간 사람의 외로움에 비한다면 이 정도를 고생이라고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도 한다.


어쩔 수 없다. 추우면 추운 대로, 꾸역꾸역 가야지. 그게 남은 내가 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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