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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24. 2022

무릎

-255

나는 몸 쓰는 일을 정말 싫어하고, 잘 못한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몸 쓰는 것을 싫어하는 건지 아니면 몸 쓰는 일을 잘 못해서 내향적인 성격이 된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야말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시절 체육 시간에 뜀틀 넘기를 하다가 엉덩이가 뜀틀 끝부분에 걸려 더없이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매트 위에 풀썩 고꾸라졌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귀가 따갑게 웃던 짓궂은 남자애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그날 이후 체육 수업은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싫은 수업이 되었다. 그래서 조금만 아파도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체육 수업을 빠지려고 했다. 그 때문에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 오신 적도 있었다. 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그런 몸치답게,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어른이 되고서도 나는 겨울마다 한 번씩 무릎을 깬다. 눈길을 종종걸음 치며 걷다가 삐끗 균형을 잃고, 어어어 하는 순간에 우당당 자빠지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눈길이 아니라, 눈이 여러 번 밟혀 반들반들하게 다져진 얼음을 잘못 밟아 미끄러지는 것이겠다. 그때마다 그는 미끄러운 길 잘 걷지도 못하면서 성질은 왜 그렇게 급하냐고 지청구를 했다. 찬찬히, 한 발씩, 조심해서 걸으면 되지 않냐고. 누가 뒤에서 잡으러 오냐고. 그렇게 해마다 하나씩 얻은 훈장들은 아직도 무릎 곳곳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오늘도, 사실은 그게 제일 걱정이다. 체감온도가 영하 17도에 달한다는 바깥의 날씨야, 뭐 어찌하겠는가. 어차피 나 또한 그에 걸맞은 중무장을 하고 나갈 테고 내가 차 안이나 건물 안이 아닌 그 한파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는 않을 테니 그거야 필살의 무기인 롱 패딩과 목도리 마스크 등등으로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올해 겨울 이 추운 날씨에, 다들 학업과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한파와 싸우시는 동안 나는 따뜻한 집안에 처박힌 채 뿌옇게 김서린 유리창 너머로 날리는 눈을 보며 아 춥다 하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으니 이쯤에는 나도 겨울 맛을 한 번 봐야 하지 않겠는가. 뭐 그렇게 생각하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그러나 봉안당으로 올라가는 그 비탈길이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을지, 엉망으로 눈이 쌓여 미끌미끌하게 얼어 있는 건 아닌지, 내 운동신경으로 과연 무릎을 깨지 않고 거길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을 것인지. 그런 걸 생각하면 조금 무섭기도 하다. 숫제 버스 한 정거장 전쯤에 내려서 택시를 탈까 하는 나약한 생각까지도 해본다.


그러나 뭐, 걱정은 거기까지만 하기로 한다. 날씨는 춥지만 눈이 내리지 않아 다행이고 날씨는 춥지만 이보다 더 춥지 않아 다행이고 날씨는 춥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그를 만나러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니까. 사람이란, 결국 닥쳐보면 어떻게든 살아내는 존재더라는 것이 지난 8개월간 배운 유일한 교훈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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