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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25. 2022

혼자만의 소금빵

-256

요즘의 나는 그와 함께 지낼 때에 비해 먹는 것이 반의 반 정도로 줄었다. 그 반대급부로 가끔 불쑥 뭔가가 먹고 싶어지면 그 욕구를 참는 것이 전에 비해 훨씬 어려운 것 같다. 예전엔 워낙에 뭘 잘 먹고 많이 먹어서 몸이 타협이라는 걸 할 줄 알았다면 요즘은 가뜩이나 먹는 것도 부실한데 이거라도 좀 내놔 하고 땡깡을 부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제는 유부초밥이 그랬다.


그를 만나러 봉안당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불쑥, 오늘은 유부초밥이라도 좀 사다 놨다가 오후 출출할 때 먹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버린 것이 문제였다. 유부초밥이야 집 앞 편의점에서도 팔고 있지만 냉동된 밥알 말고 금방 만든 보들보들한 유부초밥이 먹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 눈 쌓인 추운 날씨에 집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내려서 유부초밥을 사들고 집까지 걸어가라니. 안 됐지만 어제의 걷는 할당치는 봉안당에 올라가는 그 비탈길에서 생고생을 한 걸로 이미 채웠으므로 도저히 그럴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잔머리를 굴려서, 집에서 한참 떨어진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내렸다. 그 아파트 상가에는 이런저런 가게들이 있으니, 설마 유부초밥 하나 파는 데 없겠나. 재빨리 유부초밥을 사고, 얼른 돌아와 환승을 찍고 타면 버스비는 버스비대로 굳고 걷지는 않아도 되고 금방 만든 보들보들한 유부초밥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좋아. 자연스러웠다. 거기까지는.


문제는 그 아파트의 상가가 구조가 대단히 복잡하고, 심지어 반개방형으로 되어 있어서 어제 같은 날 기웃거리며 모르는 가게를 찾아 헤매기에는 대단히 부적절한 구조였다는 것이다. 길게 난 통로를 통해 찬 바람이 마치 일부러 후후 불기라도 하듯 들이닥쳤고 나는 상가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두어 번쯤 왕복한 후 지치고 말았다. 내가 미쳤지. 뭐 먹고살 일이 났다고 그까짓 유부초밥에 꽂혀서. 곱게 집 근처에서 내려서 유부초밥 포장했으면 벌써 집에 가고도 남았겠다. 그렇게 한참을 투덜거리고 있을 때였다.


잊고 있었다. 그 상가에는, 그와 종종 가던 단골까진 아니지만 그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꼭 들르던 빵집이 있었다. 가게 앞에는 얼마 전부터 소금빵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주인이 직접 쓴 것 같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종이를 들여다보다가 홀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가 소금빵 몇 개를 사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나서야 알았다. 그가 떠난 후, 처음으로 빵집에 가서 빵을 샀다는 걸.


간만에 오븐을 돌려 사온 소금빵을 살짝 데워서 먹어보았다. 원래도 평범한 동네 빵집의 수준을 넘는 가게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랬다. 적당한 버터의 유분과 짭짤한 맛이 뒤섞인 소금빵은 포근포근했고 맛있었다. 그 맛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맛있어서 나는 좀 당황했다. 혼자 먹는 소금빵은 조금 씁쓸할 줄 알았는데. 나는 그렇게 소금빵 두어 개와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혼자 맞는 첫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다.


먹으면서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울지는 않았다. 혹시나,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이라도 주시지 않을까 해서. 물론 오늘 아침에 일어나본 머리맡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하긴 내가 가장 바라는 선물을 줄 수 있는 산타 같은 건 이 세상엔 있을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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