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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26. 2022

그 빵집이 문을 열면

-257

이미 몇 번이나 썼던 것 같지만 그와 나는 전형적인 빵돌이 빵순이 커플이었다. 유명하다는 명란 바게트 한 번 사 먹어 보겠다고 목포까지나 간 적도 있었으니 말 다했다. 그의 컴퓨터 안에는 그렇게 '빵지순례'를 다녀온 결과 둘이서 같이 매긴 우리만의 빵슐렝 스코어가 따로 정리되어 있는 문서도 있다. 이제 업데이트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처음부터 그와 내가 빵지순례씩이나 다니는 하드코어한 빵돌이였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우리도 집 근처의 평범한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서부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들의 장점이자 단점은 구색이 일정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언제 가도 폼이 일정한 대신 쉽게 질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빵지순례는 시작되었다. 맛있으면서, 좀 덜 질리는 빵. 그냥 그런 것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일단 우리가 사는 생활권 인근의 오래된 동네빵집들 위주로 한 군데씩 도장 깨기라도 하듯 가 보기 시작했다. 긴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은 동네빵집들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유명하다는 빵집들을 일부러 한 군데씩 찾아가 보게 되었다.


그러던 빵집 중에, 우리 집 인근에서는 가장 전국구로 유명하다는 빵집 한 군데가 있다.


그 집은 우리가 처음 빵지순례를 시작하던 아주 초창기에, 그야말로 미친 듯이 사다 먹은 집이었다. 매주 주말마다 가서 빵값으로만 5만 원 이상씩을 쓰고 왔으니 대략 알만하다. 그렇게 반년 정도를 사다 먹고 나니 우리는 그 집 빵에 살짝 물려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그 집엔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고도 가끔 사다 먹는 그 집 빵은 과연 서울도 아닌 경기도 한 모서리에 자리한 주제에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 있는 빵집의 맛이라 할 만해서 그도 나도 매번 감탄했었다. 이 집 빵 초반에 그렇게 미친 듯이 사다 먹지 말걸 그랬다고, 그땐 빵맛도 잘 모를 때였는데 하고 그는 후회하듯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 말에 어느 정도 동감했다.


그저께 그를 만나러 봉안당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 것이 너무 춥고 고통스러워서, 평소에 잘 타지 않는 노선의 빨리 오는 버스를 타버린 것이 문제였다. 웬만큼 돌아가는 버스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버스는 도대체 집에는 언제 가겠다는 속셈인지 돌아가는 길마다 돌아가며 느릿느릿 노선을 타고 달렸다. 처음엔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추운 정류장에 서서 벌벌 떠는 것보다는 낫지 않으냐고, 나는 늘 그랬듯 참 쉽게 포기해 버렸다.


버스는 우리 집 근처에 얼마 전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갔다. 원래 그렇게 가는 노선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바뀐 모양이었다. 큰길 쪽으로 난 상가에는 벌써 이런저런 가게들의 간판이 나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상가의 2층, 가장 잘 보이는 통유리창에는 우리가 가던 그 빵집의 직영분점이 들어올 예정이라는 현수막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나는 잠시 멍해져서, 일부러 고개를 돌려가며 뒤로 멀어져 가는 그 현수막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오빠 그 빵집 우리 집 근처에 분점 낸대. 조금만 있다가 가지 그랬냐고. 뭐 그런 말을 했다. 차를 탈 필요도 없이 몇 발만 걸어가면 그 집 빵 사 올 수 있게 됐는데, 맛이라도 보고 가지 그랬느냐고.

 

내년 돌아오는 그의 생일엔 그 빵집의 당근 케이크를 사다가 한 조각 잘라서 그의 책상에 놓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당근 케이크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빵집의 당근 케이크만은 맛있다고 했었으니까. 당신이 떠나도, 나는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고. 그런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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