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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29. 2022

기어이 유부초밥을 사다 먹었다

-260

크리스마스 이브였으니까 24일 날이었나 보다. 그를 만나러 봉안당에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갑작스레 유부초밥을 떠올리고는 사다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했던 게. 먹고는 싶은데 집 근처엔 파는 곳이 없어서, 그걸 사겠다고 두세 정거장 앞에서 내리면 이 눈 쌓여 엉망이 된 길을 한참이나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한 발짝이라도 덜 걷고 유부초밥을 사다 먹을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치열하게 잔머리를 굴렸던 것이. 그래서 그 결과 결국은 꿩 대신 닭이라고 소금빵을 사다 먹게 된 이야기를, 며칠 전에 쓴 적이 있다.


그러나 꿩은 꿩이고 닭은 닭이라는 모양인지, 그 맛있던 소금빵도 한 번 불붙은 유부초밥에 대한 식탐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결국 어제 오후쯤, 나는 이 추운 날씨에 꾸역꾸역 옷을 껴입고 집 앞 편의점에 가서 유부초밥을 사 와서 꾸역꾸역 먹었다. 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그 유부초밥은 사실 내가 기대한 것 같은 그런 맛은 아니었지만 아쉬운 대로 한 번 동한 입맛을 달랠 만은 했다. 그렇게 몇 개 집어먹고 나니 거짓말처럼 유부초밥 먹고 싶다는 생각이 싹 가시는 것이, 어지간히 먹고 싶기는 했던 모양이다.


유부초밥은 실은, 그가 떠나기 전 나에게 해준 마지막 음식이다. 그날도 그렇게 몸이 좋지 않아 힘들어하면서도, 그는 기어이 주방으로 나가 으깬 두부와 스크램블 에그를 넣어서 버무린 밥으로 유부초밥을 만들어 주었다. 원래도 유부초밥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날의 유부초밥은 한층 더 각별하게 맛있었다. 옆통수가 따가워 고개를 들어보니 그는 젓가락조차 놓아버린 채 내가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빙긋 웃었다. 잘 먹는 거 보니까 좋아서.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이 장면은 딱히 잊은 것도 아니면서도 한참이나 접혀진 책의 모서리처럼 그렇게 접혀 있다가 어제 그 밥알이 뻣뻣하게 굳은 냉장 유부초밥을 다 먹을 때쯤에야 뒤늦게 생각났다. 그러니까 그날의 그 유부초밥 맛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유부초밥인 셈이다. 편의점 유부초밥을 아쉬운 대로 먹긴 해도 그렇게까지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꼭 그 차갑고 뻣뻣한 밥알 탓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왜 뜬금없이 유부초밥이 이렇게 먹고 싶은가 했더니, 아마 그가 해 준 마지막 음식이어서 그랬던 건가 싶기도 하다. 그가 내 곁에 있던 마지막 해가 이제 이틀 남짓 남은 이런 시기라서. 앞으로도 내내 이런 식이겠지. 내 삶은,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의 기억과, 그 기억에 맞닥뜨려 복잡한 시장통에서 엄마 손을 놓친 어린애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버리는 순간의 끝없는 반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언젠가 내 손으로 유부초밥을 해 먹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날의 그 유부초밥보다 맛있을 리는 별로 없어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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