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당신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Dec 30. 2022

이것 좀 어떻게 해야 하는데

-261

이것 좀 어떻게 해야 하는데, 하고 그가 중얼거리던 항목 중에 들떠 일어난 욕실 앞의 바닥재 문제가 있었다. 새 집이라고는 할 수 없는 다소 연식이 있는 집에 살다 보니 돌아가면서 한두 군데씩의 문제를 일으키는 중인데, 작년쯤부터 부쩍 유독 욕실 앞 바닥의 마루 바닥재가 심하게 울어 들고일어나기 시작했다. 욕실에서 물을 많이 쓰니까 그 습기랑 뭔가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었다.


본래 그의 천성대로라면 인터넷을 뒤져 이럴 때 남들은 어떻게 하는가를 빡세게 조사한 후에 필요한 부재료가 있다면 나한테 시키거나 해서 주문하고, 하루 날을 잡아 그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도록' 온갖 짓을 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이것 좀 어떻게 해야 하는데, 하고 중얼거리다가도 날이 풀리면 하자 라든가 장마철 지나가고 나면 하자 라든가 날 좀 시원해지면 하자 라든가 하는 식의, 딱 내가 댈 법한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 또한 바닥재 따위를 신경 쓸 만큼의 몸 상태가 아니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새삼 서글퍼질 뿐이다.


어쨌든 이것 좀 어떻게 해야 하는데 하는 말을 되풀이하는 사이 그는 먼저 떠났고, 나는 욕실 앞 바닥재가 들고일어난 우리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사실 들고일어난 바닥재 따위를 못 본 체하며 지내는 건 내 성격에는 아주 쉬운 일이다. 마침 위치도 내가 하루 종일 머무는 방이나 거실도 아니고 욕실 앞이지 않은가. 욕실을 쓸 때만 잠시 잠깐 흐린 눈을 하고 못 본 체하면 그까짓 들고일어난 바닥재쯤 신경 쓰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그 편이 나다운 것이기는 하다. 다만 문제는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화장실에 사다가 그 들고일어난 바닥재의 모서리에 발을 긁히거나 찔려서 비명을 지른 일이 몇 번 있었다는 것이다. 자다 깬 정신으로 그런 것까지 조심하는 건 좀 무리가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때마다 아유 이것 좀 어떻게 헤야 하는데! 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제, 나는 청소기를 밀다가 결국 '이것 좀 어떻게 해버리기로' 마음을 굳혔다.


들떠 일어난 바닥재를 수습하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장판재 전용 본드를 바른 후 들뜬 장판재를 붙이고 그 위를 무거운 것으로 눌러두면 좋다고 한다. 그러나 그중 어떤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집에 있는 연한 갈색의 동테이프를 가져와 일어난 장판재를 따라 결대로 붙였다. 물론 이 방법으로는 들뜬 현상 자체가 해결되진 않는다. 테이프를 발라놓은 바닥재들은 여전히 바닥에 착 붙지 않고 떠 있어서 발로 밟아보면 버스럭대는 소리가 난다. 다만 들고일어난 모서리에 발이 긁히는 것만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심하게 들고일어난 몇몇 곳에 몇 번이고 테이프를 발라 꾹꾹 눌러둔 후, 나는 만족스럽게 이제 최소한 아침에 화장실 갈 때 발은 안 찔리겠지 하고 중얼거렸다.


그의 성격엔 하나도 맞지 않는 방법이다. 그라면 이렇게 엉성한 땜질을 하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참, 너 답다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을 것 같다. 뭐 물론 나도 할 말은 있다. 그러게, 이러고 사는 게 꼴사나우면 그렇게 도망가면 안 되는 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어이 유부초밥을 사다 먹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