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당신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Jan 01. 2023

벌써 새해 첫 욕을 하다

-263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는 상투적인 문장으로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아침이다.


어제 나는 실로 오랜만에 맥주를 한 캔 마셨다. 그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지기 전 우리의 자그마한 세레모니 중 하나는 월요일 저녁 시간에 그럴듯한 안주 요리를 하나 해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정신없는 월요일을 무사히 보낸 것에 대해 서로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는 거였다. 안주 만드는 건 거의 그가 다 했고 나는 편의점에 가서 '이번 주의 맥주'를 골라오곤 했다. 그런데 내가 골라오는 맥주들은 대개가 맛이 없어서 그는 몇몇 브랜드를 말해주며 자신 없으면 그냥 그걸 사 오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번번이 골라온 맥주가 맛이 없어 빈정이 상하면서도 나는 다음 주가 되면 지치지도 않고 또 다른 맥주에 도전했고 그런 나를 보며 그는 많이 웃었었다. 어제 혼자 마신 맥주도 그랬다. 무려 '모히또맛'이라길래 혹해서 사 왔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 같은 그런 맛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간만에 들어간 알콜 기운에도 불구하고 잠이 잘 오지 않아 새벽 두 시 가까이까지 뒤척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이런저런 정리를 하면서, 나는 며칠 전 기껏 주문해두었던 올해의 달력을 꺼내 들었다. 원래의 달력을 떼내고 그 자리에 걸 참이었는데, 달력에 펀칭이 된 구멍이 너무 작아 걸이에 꽉 끼어서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빼내야 했다. 달력이 걸려있는 위치는 키가 작은 나로서는 까치발 정도로는 닿지 않아서, 나는 근처에 있는 스툴에 무릎을 대고 엉거주춤하게 올라선 자세로 그 달력을 떼는 작업을 해야 했다. 온 뭄의 체중이 다 실린 무릎이 너무 아팠고,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몇 마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래놓고 뜨끔했다. 이야. 나 올해 아침 일곱 시 반에 벌써 욕하네. 올해 도대체 얼마나 욕할 일이 많이 생기려고.


간밤에 잠이 들지 않아 핸드폰을 만지작대다가 나는 내가 올해 토정비결도 한 번 보지 않았음을 깨닫고 몇몇 사이트에 들러 토정비결을 봤다. 기분 좋으라고 좋은 말만 써놓은 것이 분명한 몇몇 결과를 제외하고, 조견표라는 것을 찾아가며 찾아본 내 토정비결은 그저 그랬다. 아니 잠깐, 토정비결은 음력으로 보는 거잖아? 하고 음력으로 다시 찾아서 본 토정비결은 좀 더 엉망이었다. 원래의 결과가 그저 그랬다면 두 번째 찾아본 결과는 살짝 나쁜 쪽에 가까웠다. 괜히 입맛이 써서 삐죽거리다가, 나는 문득 작년 내 토정비결 운세가 엄청 좋았던 것을 떠올리고 쓰게 웃었다. 하긴. 생년월일 몇 가지로 찾아볼 수 있는 몇 가지 운세만 가지고 미래를 다 알 수 있다면 인생 얼마나 쉽고 편할까.


해가 바뀌고 이제 겨우 여덟 시간 남짓이 지났는데도 벌써 내게는 이런저런 일이 일어났다. 올해는 또 어떤 한 해가 될지, 슬그머니 걱정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기대가 되기도 한다. 해가 바뀌었으니 오늘도 봉안당이나 다녀올까 한다. 가서 새 꽃도 놓아주고, 그의 얼굴도 보고 올 생각이다. 가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해야지. 쓰고 남는 복이 있으면 나한테도 좀 달라는 말도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12월 32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