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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02. 2023

타이머가 없으니

-264

어제는 생각보다는 날씨가 덜 춥더니 오늘은 또 귀신같이 다시 추워진 모양이다. 올 겨울은 정말 내내 이런 식으로 아주 춥다와 덜 춥다만 반복할 생각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추운 새해 첫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고, 나는 정말로 일어나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아주 잠깐이지만 그냥 이불 둘러쓰고 다시 자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건 아마도 이제 새해라는 생각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연말, 특히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신정까지의 날들에는 뭔가 좀 나태하게 굴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묘한 안도감 같은 게 있다. 그러나 며칠 사이로 해는 바뀌었고, 이젠 적당히 빈둥거려도 되는 연말이 아니라 한 해의 시작을 다져야 하는 연초가 되었다. 그런 부담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 생각은 결국 생각으로 그치고, 나는 꾸역꾸역 일어나 아침 청소와 정리를 하고 또 이렇게 오늘 분의 청승맞은 글을 쓰기 위해 데스크탑 앞에 앉아있다.


이상한 일이다. 이제 내가 뭘 어쩌고 살든 아무도 잔소리할 사람은 없다. 도저히 더는 잠이 오지 않을 때까지 늦잠을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귀찮을 때는 굶고, 청소니 정리 따위 하지 않고 뒹굴거리고, 술이나 담배 따위를 잔뜩 사다 놓고 탐닉한다고 해도 아무도 나를 탓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가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심리적으로 허한 상태에, 나를 붙들어줄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태. 그런 상태에 놓인 내가 이만큼이나 엇나가지 않고 살고 있다는 건 일견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생각건대 그건 아마 '타이머'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전자레인지 대신 조그만 오븐 하나를 들여놓고 그 오븐에 뭔가를 구우면서 그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타이머의 진짜 기능은 시간을 재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이 가는 동안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게 아닐까. 180도에서 10분, 200도에 5분 하는 식의 레시피에 따라 오븐을 사용하려면 타이머는 필수이다. 그 타이머의 기능이 시간을 재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세고 서 있지 않아도 되도록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라니. 오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그런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말은 그라는 타이머가 사라져 버린 지금 더 절실하게 맞는 말이 되었다.


나는 이제 내가 한 번 망가지기 시작하면 아무도 나를 다잡아줄 수 없다는 걸 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은 아무도 하지 않고, 내가 벌인 일은 아무도 뒷수습해주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래서 아무리 귀찮아도 하게 되고, 불쑥 저질러버리고 싶은 일들은 참게 된다. 타이머가 고장 난 오븐 앞에서 시계를 들고 시간을 재는 사람처럼.


이 사실을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다면 타이머는 조금 편했을 텐데. 너무 많이, 너무 자주 써먹어서 수명이 좀 빨리 다해버린 건 아닐까. 오늘아침에는 그런 하나마나한 생각을 잠시 한다. 이제는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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