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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03. 2023

냉동 붕어빵을 데우는 방법

-265

'붕세권'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많이 웃었다. 그럼직해서였다. 겨울이 오면 은근히 궁금하게 생각나는 붕어빵이지만 요즘은 먹고 싶다고 아무렇게나 사서 먹을 수 있지만도 않다. 걸어서 붕어빵을 사 먹으러 갈 수 있는 지역이라는 뜻의 저 말은 참 시의적절한 명명법이 아닌가 싶다.


우리 집은 올해 들어서 저 붕세권에서 탈락했다. 작년까지는 큰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그래도 사 먹을 수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다른 일로 그 근처를 지나가며 기웃거려보니 노점이 없어진 모양이었다. 겨울이 오면 그와 일부러 거기까지 걸어가서 팥과 슈크림이 든 것으로 반반을 섞어 한 봉지를 사서는, 집까지 가져올 것도 없이 돌아오는 길에 다 먹어버리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머리부터 먹는 파였고 그는 꼬리부터 먹는 파였다. 그냥, 그런 추억 하나도 이런 식으로 없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그러나 겨울에 붕어빵 비슷한 것을 전혀 먹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또 나름 섭섭한 일인지라 나는 얼마 전 마트에 주문을 하면서 그야말로 꿩 대신 닭이라는 기분으로 냉동 붕어빵을 한 봉지 주문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우리 집에는 전자레인지가 없다. 에어프라이어는 있긴 하지만 잘 쓰지 않아 꽁꽁 싸서 냉장고 위에 얹어둔 상태다. 이 냉동 붕어빵을 데우려면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해야 된다는 모양이었다. 그런 게 어딨어. 이 말은 그가 꼽는 내 1번 단골멘트이기도 한데, 나는 진짜 습관처럼 이 말을 내뱉고는 냉동실에 얼려놓은 빵 데우는 요령으로 예열을 한 오븐에다 붕어빵 몇 개를 넣고는 5분쯤 돌렸다. 잔뜩 기대를 하고 먹어본 붕어빵은 대실패였다. 속에 든 슈크림이 하나도 녹지 않아 붕어빵이 아니라 붕어모양 아이스크림을 먹는 맛이 났다. 나름의 맛은 있었지만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다. 나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남은 붕어빵을 비닐에 싸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두 번째 먹을 때는 10분쯤 돌렸다. 그랬더니 가까스로 아이스크림 꼴은 면했지만 그래도 뭔가 미진했다. 껍질은 하나도 바삭바삭하지 않았고 크림은 찬 김은 빠졌지만 그래도 따뜻하진 않았다. 붕어빵보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슈크림 든 만쥬가 식은 것에 가까웠다. 올해 붕어는 영 어획량이 좋지 않다고, 이래서 수제랑 기성품은 다른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어제 오후에, 출출한 오후에 그냥 남은 붕어빵이나 데워서 먹자 하고 남은 것들을 죄다 꺼내 15분쯤 돌렸다. 그랬더니 그제야 내가 원하는 비슷한 맛이 되었다. 물론 사람이 직접 구워주는 붕어빵에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까진 되었다. 이제야 겨우 오븐을 써서 붕어빵을 데울 때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알았는데, 사다 놓은 붕어빵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어쩐지 몹시 아쉬운 기분이 되었다.


나는 종종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너무 늦게, 혹은 다 지나가고 나서야 깨닫는다. 슬프게도. 그에게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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