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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04. 2023

가지밥 생각이 나는 동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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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채워놓았던 식재료들이 또 이것저것 떨어져 가서 마트 주문을 일간 한 번 해야 하려나 싶은 참이다. 장을 보려면 우선 식단을 짜야 해서 달력을 본다. 그 식단대로 밥을 해 먹으려면 무엇 무엇이 집에 있고 무엇 무엇을 사야 하는지에 대한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올해 설은 조금 일찍, 1월 20일경에 들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 장을 보면 그 안에 또 장을 보진 않을 테니 설에 먹을 것들도 조금 사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설에는 역시 떡국이겠지만 나 혼자 먹자고 최소한 500그램이나 되는 떡국떡을 사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는 떡국떡을 좋아해서 심지어 라면을 끓일 때조차도 한 주먹씩 넣곤 했지만 나는 떡국떡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았다. 게다가 경험적으로 떡국떡은 그렇게까지 유통기한이 길지도 않다. 그래서 올해 설날엔 떡국은 관두고 만둣국이나 끓여 먹기로 한다. 비빔밥 같은 거 해 먹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나물은, 그거 뭐 어떻게 하는 건지 나는 잘 모른다. 그래서 패스한다.


이런 식으로 몇 단계를 건너뛰다가, 나는 문득 그가 해주던 가지밥을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가지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그 물컹거리고 흐물흐물한 식감이 영 기분 나빠서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가지를 가지고, 내가 알아서 가지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게끔 맛있는 것들을 꽤 자주 만들어 주었다. 그중에 가지밥이 있다. 가지를 씻어서 적당하게 썰고, 간장 양념을 해서 다진 고기를 좀 볶은 후에 밥을 할 때 밥솥에 가지와 볶은 고기를 같이 넣고 밥을 하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요리다. 밥이 되는 동안 양념간장을 만들고 밥이 다 되면 퍼다가 비벼먹으면 그걸로 끝이다. 나는 그가 해주는 음식들 중에 이 가지밥을 제일 좋아했다. 그래서 몇 년 전 불의의 사고로 몇 달이나 병원 신세를 질 때도 그에게 가지밥 먹고 싶다며 몇 번 칭얼대는 소리를 했었다.


그리고 그가 떠나간 후 나는 그 가지밥을 한 번도 해 먹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집 밥솥이다. 이미 몇 번 쓴 적이 있지만 6인용인 우리 집 밥솥에는 1인분의 밥은 잘 되지 않아서 최소한 2인분은 해야 한다. 그러나 가지에 볶은 고기까지 넣어서 지은 밥을, 한 끼에 혼자 2인분을 먹을 게 아니라면 남은 1인분을 도대체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잘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 가지밥을 해 먹으려면 하다 못해 작은 압력솥이라도 하나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것도 참 뻘짓이다 싶어서 그냥 참고만 있다. 그래서 그 가지밥은 아마도, 지금 쓰는 밥솥이 수명이 다해 조금 작은 것으로 바꾸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해 먹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문제는 하나 더 있다. 양념간장이다. 사실 저렇게 지은 밥 자체에 뭔가 특별한 맛이 있을 리는 없고 비벼 먹는 간장의 맛이 중요할 텐데, 나는 그가 양념간장을 만들 때 정확히 뭘 얼마나 넣는지를 모른다. 그조차도 모를 것이다. 매번, 그때그때 조금씩 달랐으니까. 그래서 어느 날 도저히 그 가지밥을 안 먹고는 못 견딜 것 같은 기분이 가지밥을 하더라도, 그 양념간장을 재현하는 데 실패한 나의 가지밥은 영영 그가 해주던 그 가지밥과는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내 삶이 어떻게 변해도 나는 그를 영영 잊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내가 그 가지밥의 맛을 기억하는 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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