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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05. 2023

그런 브런치 아닙니다

-267

한 달에 한 번 정도, 브런치 앱에서 심상치 않은 알람이 올 때가 있다. 조회수가 천 단위를 넘겼다는 알람들인데, 처음에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할 만큼 놀랐다. 그러나 지금은 또 어디 노출됐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어제는 글 하나도 아니고 두 개에 그런 수상한 조회수가 잡혀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둘 다 먹는 얘길 써서 그런가.


처음 시작할 때 구독자 수가 당연히 0이었던 이 브런치는 아홉 달 동안 나름 개근을 한 값인지 얼마 전 드디어 구독자 수가 세 자리를 넘겼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이런 식으로 조회수 대란이 터져서 나를 기쁘게 해 주기도 한다. 다만 이런 일이 한 번 생기고 나면 나는 늘 걱정한다. 이 브런치 그런 브런치 아닌데. 여기서 '그런 브런치'라 함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실생활에 유용하거나 감정적으로 따뜻하고 촉촉하거나 뭐 그런 브런치가 아니라는 의미다. 전혀 그럴 의도는 없었다지만 한 번씩 이렇게 조회수가 터지는 날이면 나는 본의 아닌 제목 낚시질로 불특정한 여러 사람들의 귓가에 원치 않은 서글픈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잠시 마음이 불편해지곤 한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어딘가에서 썸네일과 제목만을 보고 누르셨을 분들은 대부분 액면 그대로의 냉동 붕어빵 잘 데우는 방법이 궁금해서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좀 더 특이하고 맛있는 가지밥 레시피 같은 걸 기대하시지 않으셨을까. 그런 분들에게 그야말로 '안물안궁'한 내 청승맞은 개인사나 주절주절 떠들어댄 꼴이다 보니 영 기분이 개운치 않다.


이 브런치에 썼던 글들을 모아 공모전에 한 번 보내본 적이 있었다. 열 명 남짓한 인원이 선발되는 1차까지는 합격했었고, 그래서 집필 의도라든가 방향 같은 것을 PT하는 자리에도 참석했었다. 그때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신 한 문인께서 '읽기에 매우 고통스러운 글들이었다'고 평해주신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평가는 사실 백 퍼센트의 호평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꽤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브런치의 글들은 아마도 한동안은 계속 이런 식일 것 같다. 그 어떤 아름답고 서정적인 제목을 달아보아도 그 아래 본문에 적히는 것은 나의 구구절절한 신세한탄과 이미 지나가버린 날들에 대한 넋두리뿐인, 그러다가 그 끝에 기어이 울음을 터트린 이야기들이지 않을까. 왜냐하면 지금의 내게는 쓸 수 있는 것들이 그런 것들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아마 다른 어떤 주제로 이 브런치를 열었다면 나는 아홉 달이나 되는 시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글을 쓰지 못했을 거다. 지금의 내게는 이런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것이 그만큼 절실하고, 절박한 문제에기 때문에.


제목에 낚여 이 브런치에 들어오신 분들께 정중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이 브런치는 기대하시는 것 같은 그런 이야기들을 적는 브런치가 아니라는 말씀과 함께. 이 브런치의 주인은, 현재 스코어 쓸 수 있는 글이란 게 이런 것들밖에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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