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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07. 2023

안 하던 짓

-269

우리 집 인근을 들르는 택배 기사님은 대개 점심 12시부터 2시 사이에 물건을 갖다 놓고 가신다. 그 말인 즉 어제 주문한 곰팡이 제거제 또한 그 시간쯤에 배달 올 예정이라는 말이 될 터였다. 택배가 오기만 하면 바로 청소를 시작할 요량으로, 나는 어제 11시쯤 이른 점심을 먹고 설거지까지를 몽땅 해치운 후 운동회 백 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서서 땅 소리를 기다리는 초딩처럼 잔뜩 긴장한 채 택배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택배는 예상대로 한 시 반쯤 왔고, 나는 벼락같이 달려 나가 택배박스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침대 헤드장 뒤쪽에 군데군데 생긴 곰팡이는, 사실 이거 뭐 제거제 뿌린다고 감쪽같이 없어지긴 할까 하는 회의감이 살짝 있었다. 그러나 웬걸, 약제를 뿌리고 잠깐 다른 일을 하다 들여다보니 그냥 뿌려놓기만 했는데도 곰팡이가 눈에 띄게 없어져 있었다. 이야, 이거 신기하다. 나는 잔뜩 신이 나서 얼룩덜룩하게 남아있는 곰팡이 쪽으로 약제를 몇 번이고 더 뿌렸다. 뿌리는 김에 욕실 세면대 실리콘과 틈새 모서리 같은, 청소를 하느라고 해도 잘 닦아지지 않는 곳에 거뭇거뭇 끼어 있는 곰팡이 쪽에도 한참을 뿌려댔다. 몇 번의 눈비를 맞아 엉망이 되어 있던 창틀도 죄다 닦았다. 각오했던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효용답게 제법 톡 쏘는 냄새가 났다. 마침 어제는 간만에 날이 영상으로 올라온 날이었고 나는 이때다 하는 기분으로 온 집안의 창문을 다 열고 환기를 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을 열어놓았다. 이 정도면 됐겠지 하는 기분으로 창문을 닫았다. 그러나 창문을 닫고부터 눈이 따끔따끔하고 입 속으로 이상한 화학약품 맛이 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환기가 덜 됐나 보다 하는 생각에 나는 다시 창문을 열었다. 그렇게 두 시간쯤을 더 열어두었으니 토탈 세 시간쯤을 열어둔 셈이다. 그러는 사이 보일러의 온도는 17도까지 떨어졌다. 그러는 동안 한동안 엄두가 안 나서 못 빨던 헤드장에 기대 등 쿠션 겸 해서 쓰던  쿠션의 커버를 벗기고 빨아서 집 앞 빨래방 건조기에 바싹 말려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 여기저기 피어 있던 곰팡이는 일단 죄다 사라지고 없었다. 거기까지를 확인하고, 나는 끄집어냈던 침대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고 청소를 하느라 어지럽혀진 집안을 이것저것 정리했다.


그 난리를 치고 나니 저녁쯤부터 급격히 몸이 으슬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어제 날씨가 영상이었다지만 엄연한 겨울 날씨에 세 시간이나 창문을 있는 대로 열어놓고 있던 게 무리였을까. 아홉 시가 좀 넘어가면서부터는 책상에 앉아있기가 힘들 만큼 컨디션이 다운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크게 앓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열 시도 안 된 시간에 집에 남아있는 감기약 두 알을 털어먹고 담요까지 하나 더 꺼내 이불을 두 겹으로 둘둘 말고는 그냥 자 버렸다. 이 와중에 아프기까지 하면 몹시 서러울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한숨을 자고 일어나니 초동 대체가 나름 좋았던 건지 오늘 아침엔 한결 컨디션이 좋아졌다.


어제 그 고생을 하며 닦아놓은 집안은 한결 깨끗해져서 보기는 좋다. 역시 가습기가 문제였던 건지, 어제 하루 가습기를 틀지 않았을 뿐인데 오늘 아침엔 곰팡이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결로가 거의 없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정말로 가습기를 안 틀어야 되는 건가. 그렇지만 확실히 가습기가 없으니 눈코입의 점막이 눈에 띄게 마르고 아침엔 심하다 싶을 만큼 목이 마른데. 게다가 우리 집엔 이제 화분도 두 개나 있는데. 틀긴 트는데 시간을 좀 줄여 볼까. 그런 고민을 한다.


딱 한 발 차이로 된통 앓아눕는 걸 겨우 피해 간 기분이긴 한데 편의점 감기약이라도 좀 사다 놓아야 할까. 뿌옇게 찌푸린 창 너머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와중에 아프기까지 하면 정말로 서러울 것 같은데.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사흘 안에 죽는다더니만, 이래서 그런 말이 나왔는가 하는 생각도. 너 그 급발진하는 버릇 언제쯤 고칠래. 그는 아마 그렇게 말하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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