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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08. 2023

무화과 잎이 지면

-270

겨울을 나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가 지난봄 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반쯤은 충동적으로 들여놓은 화분 두 녀석의 생육이다. 둘 다 데려온 연원이 연원이라 내 손에서 죽게 하는 일만은 없게 하고 싶지만 워낙에 무디고 섬세하지 못한 성격인지라 그것조차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걱정은 다육이 쪽을 조금 더 했었다. 한 번 충동구매를 했다가 죽여버린 기억이 있기도 하고 어째서 그런지 다육이라고 하면 열대지방이 원산지일 것 같은 느낌이 있기도 해서다. 그러나 의외로 이 녀석은 꽤 무덤덤하게, 내가 장님 문고리 잡는 수준으로 해놓은 분갈이를 버티고 꿋꿋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자라는 방향이 한쪽으로 좀 많이 기울었다 싶은 것만을 제외한다면. 아래쪽으로는 끊임없이 이파리가 하나둘씩 말라 하엽이 지고 있지만 그만큼 위쪽의 이파리들은 제법 짙은 푸른색이 돌고 모양도 단단하게 잡혔다. 소심한 집사에게 걱정 말라고 말해주기라도 하듯이.


그러나 무화과 쪽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우리 집 무화과 화분은 얼마 전부터 눈에 띄게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무화과라고 하면 성경에도 나오는 식물이니 아마도 주산지가 이스라엘 근방일 것이고 그런 기후에서 사는 식물에게 한국의 겨울이 가혹할 것은 알만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다 차치하고 봐도, 무화과의 이파리 중 가장 큰 것은 내 손바닥만큼이나 되는 크기니(키가 30 센티 님짓인 걸 생각하면 몸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크지 않나 싶은 정도다) 딱 봐도 겨울을 잘 날 것 같지 않게 생기긴 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작은 것부터 이파리가 노랗게 변해 하나씩 떨어지고 있다.


날씨가 심심하면 영하로 떨어지는 이런 날씨에 식물이 최소한의 에너지로 겨울을 나기 위해 이파리를 떨어뜨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가을 무렵 보는 사람에게 온갖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낙엽이라는 게 결국은 그 산물이 아니던지. 지금은 1월이다. 그나마 실내에서, 내가 나름대로 온갖 짓을 다 해가며 시중을 들고 있어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지금 그나마 달려있는 이파리들도 한참 전에 다 떨어졌어야 맞다. 저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일 뿐이다.


라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마음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침저녁으로 그나마 햇볕이 잘 드는 창가를 찾아 화분을 옮겨놓으면서 나는 날마다 조금씩 더 노랗게 변해가는 무화과의 이파리들을 들여다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혹시나 내가 물을 너무 자주 준 건 아닌지, 너무 찬물을 준 건 아닌지, 역시나 볕을 너무 못 쬐어준 건 아닌지, 식물 키우는 집에는 생육등 같은 것도 하나씩 있다는 모양이던데 그런 거라도 하나 사다가 인공적으로라도 볕을 좀 만들어줬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온갖 생각들을 한다. 가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는데도 무화과에 새 잎이 나지 않아 파보았더니 뿌리째 썩었더라는 글들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 그러게, 식물이 멀쩡한지 아닌지를 눈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이파리뿐이라, 그 이파리들이 하나 둘 말라 떨어지는 것에 나는 이렇게 동요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봄은 왔는데. 이 녀석은 내 부주의로 인해 이미 죽어버린 뒤라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러나 그렇다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처럼 아침저녁으로 햇볕 잘 드는 데로 옮겨놓았다가 밤이 되면 방에 들여놓고, 며칠에 한 번씩 날짜를 지켜 물을 주는 것 정도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 후엔 그냥 한없는 기다림만이 있을 뿐이다. 녀석이 이 어설픈 집사 곁에서 이 추운 나날을 무사히 견뎌주기를. 그때까지는 채점을 기다리는 학생이 된 기분으로 매일매일을 노심초사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수밖에는 없겠지. 그렇게 올해 겨울을 무사히 나면, 내년 겨울부터는 녀석도 나도 피차 좀 편안해지지 않을까.


무화과는 그의 탄생화다. 나는 그를 또 떠나보내고 싶지는 않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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