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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Feb 21. 2023

절반이 아닌 3분의 1

-314

가끔 밥을 해 먹는 일정이 꼬이거나 오후 들에 급작스레 뭔가가 먹고 싶어져서 배달 어플을 뒤질 때가 있다. 물론 이런 건 작년 여름 정도까지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당시의 나는 내가 평생 나 하나 먹자고 뭔가를 시켜 먹는 일 따위는 없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나는 작년 연말엔 둘이서 늘 송년 세레모니 삼아 사다 먹던 모 브랜드의 햄버거 세트를 시켜 먹었고 피자도 레귤러 사이즈이긴 하지만 두 번이나 시켜서 먹었다. 사람이란 얼마나 얄팍하고 간사한가 하는 생각을 이런 순간마다 하게 된다.


이런 순간에 결정적으로 결제를 먹는 건 슬프게도 그에 대한 의리가 아니라 최소주문금액 혹은 과도하게 책정된 배달비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최소주문금액 따위는 당연히 신경 쓸 일이 없었고 배달금액이 다소 비싸다고 해도 어차피 둘이서 먹을 거니 반으로 나눈다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덜 비싸게 느껴지는 그런 게 있었다. 그러나 혼자가 된 지금은 배달비가 천 원만 뛰어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고 3천 원이 넘어가는 메뉴는 아예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다. 내가 혼자 시키는 음식이래야 2만 원을 넘기기 힘든데 거기에 배달비가 4, 5천 원이 붙어버리는 건 타격이 너무 크다.


그는 '좋은 사람과 같이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삶의 대단히 큰 즐거움 중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면 딱 2인분만 시키지 않고 사이드 메뉴 중에 맛있어 보이는 것으로 이것도 시켜보고 저것도 시켜서 주문 금액은 순식간에 4, 5만 원까지 불어났다. 그래도 우리는 둘이 앉아서 그걸 다 먹었다. 웃고 떠들면서, 가끔은 좀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 저녁 무렵이라면 맥주라도 한 잔 곁들여가면서. 그렇게 먹고 있노라면 얼마만큼은 남겨놨다가 내일 먹어야겠다는 당초 계획이 무색하게도 시킨 음식을 다 먹어 없애곤 했다. 그러나 이젠 그런 게 불가능하다. 내 양은 정해져 있고 그 양을 넘어가는 음식은 이젠 받아들이지 못한다. 일전에 한참이나 남겨서 결국은 버린 그 떡볶이도 그와 함께 먹었더라면 그럴 일은 없었을 테다.


그가 떠나고 나서 이제 내 인생의 모든 게 절반이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다. 어떤 부분은 그래도 절반이 훨씬 넘게 남아있고 어떤 부분은 절반에 훨씬 못 미치게 줄어들어 버리기도 했다. 뭐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20년도 넘게 엉겨 붙어 있던 것이 갑작스레 떨어져 나간 자리가 어떻게 깔끔할 수가 있겠는가 하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할인쿠폰을 쏜다는 배달 어플의 알림 메시지에 낚여 배달 어플을 뒤지다 보니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최소 주문 금액 맞추는 게 지금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아 좋다 말았다며 입맛을 다신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한다. 혼자 남는다는 건, 이런 뜻이기도 하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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