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애매할 땐 돈가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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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간만에 카레를 해 먹을 생각이었다. 카레 같은 건 한 번 끓일 때 좀 넉넉하게 끓여두면 두세 끼 정도는 데우기만 헤서 먹으면 되니 여러 모로 편리하긴 하다. 그래서 끓일 때 잘 끓이려고 나름 노력하는 편이다.


점심때가 다 돼서 이제 슬슬 밥을 앉치고 카레나 끓일까 하고 주방으로 나갔다가 나는 아침에 깜빡하고 돼지고기를 꺼내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패닉에 빠졌다. 고기를 사다 놓으면 혼자서 빨리 다 먹지는 못하기 때문에 한 번 먹을 양으로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놓고 그때 그때 꺼내서 쓰는데 아침쯤에는 미리 꺼내놓아야 볶을 때 기름이 튀어서 사방천지가 엉망이 되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물에라도 좀 담가놓아야 하나.


그때였다. 애매하게 한 줌 남은 미니 냉동돈가스가 떠오른 것은.


돈가스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와 나 또한 그랬다. 그러나 그런 것 치고 우리는 집에서 돈가스를 그닥 자주 해 먹지 않는 편이었다. 집의 화구가 아무래도 업소용에 비해 온도가 낮아서 그런지 돈가스가 만족할 만큼 맛있게 튀겨지지 않는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딱 너 먹는 거 보면 안다고, 집에서 해 먹으면 바깥에서 사 먹을 때만큼 맛있게 먹질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내가 그랬던가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재작년인지 그 전년 여름이었던지, 입맛 없는 여름에 먹을 만한 메뉴를 찾다가 냉라면을 끓여 먹은 적이 있었다. 그는 대번에 별로 좋지 않은 평을 했다. 뜨거울 땐 모르겠더니 차게 먹으니까 어딘가 쎄한 맛이 난다고 그는 말했다. 이것만 좀 잡으면 꽤 맛있게 먹을 것 같은데 뭘 넣으면 좀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에 나는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돈가스 같은 거 하나 튀겨서 넣으면 이상하려나, 하는 말을 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거 꽤 괜찮겠다는 의외의 답을 했다. 그리고 다음번엔 정말로 돈가스를 한 장 튀겨서 냉라면에 곁들여 냈다. 그걸 먹어보더니 돈가스에 밴 기름 맛이 예의 쎄한 맛을 많이 잡았다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냐며 웃었다. 그때 사실 많이 당황했었다. 나는 그가 말한 그 '쎄한 맛'이라는 게 뭔지도 잘 몰랐고, 그렇게나 깊이 생각하고 돈가스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었기에. 아무튼 그렇게 돼서, 한 2년간 돈가스를 곁들인 냉라면은 우리의 여름 별미 중 하나가 되었었다.


그런 일도 있었으니까, 카레에라고 못 넣을 법은 없겠지.


한 줌 남은 냉동 돈가스를 꺼내 볶고 있던 감자와 양파 위에 넣고 같이 볶았다. 그러고 물을 붓고 카레가루를 풀었다. 그렇게 한참을 끓여 어설프나마 돈가스 카레 비슷한 물건이 되었다. 먹어보니 나쁘지 않다. 생고기에 비해 고기가 크게 씹히는 맛도 있고 카레 국물이 배어 누글누글해진 튀김옷도 나름 별미고. 녹지도 않은 고기를 볶느라 한바탕 난리를 쳤을 것을 생각하면 꽤 좋은 선택이었다.


카레에 돈가스를 넣어서 끓이니까 이런 맛이 나네. 나름 캐주얼하고 좋다. 어려진 기분도 들고. 그가 들었더라면 그 말에 뭐라고 대답했을지는 모르겠다. 맛있었겠네, 하고 했을지 아무리 그래도 생고기가 맛있지, 라고 했을지. 생각할수록 모르겠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급해서, 맛 한 번 봐주지 않고 먼저 가버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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