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면허를 딸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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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평생 하지 않기로 생각한 게 몇 가지가 있다. 운전도 그 중 하나다. 이유는 다른 게 없다. 나는 너무나 쉽게 겁을 먹고 그 자리에 굳어져버리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네비게이션이 두 시 방향으로 빠지라는 안내를 너무 늦게 해주거나 표지판을 너무 늦게 발견하거나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자리에 굳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나야 괜찮은데 나 때문에 바쁘고 급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되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운전해도 된다고 그는 말했다. 운전 이상하게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생각만 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남한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만 머리 속에 제대로 잘 박혀 있으면 운전해도 된다고. 그리고 너 기계 같은 건 은근히 잘만지는 편이니까 조금만 연습하면 운전 잘할 것 같은데. 그러나 나는 그의 그런 회유 아닌 회유에도 몇 번이나 고개를 잘레잘레 젓고는 '지구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운전 같은 건 평생 하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그리고 오빠 있잖아. 오빠가 평생 내 기사 해주면 되지. 그러고 보니 그런 철없는 말도 했었다.


그가 떠난 지 며칠 후, 나는 그렇잖아도 1년 이상 운행 없이 세워만 두었던 그의 차를 폐차했다. 면허도 없거니와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차를 몰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여기서 그에게 보내준 거의 유일한 그의 물건인 셈이다. 그가 자주 차를 대던 자리에는 이제 다른 차들이 주차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생각없이 마트에 갔다가 생각보다 많은 물건을 산 날, 밖에 나가야 하는데 너무너무 춥거나 더운 날,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에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때 면허라도 따둘 걸 그랬나 하고.


차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가장 절실하게 한 건 작년 그의 삼우제때였다. 실은 그날 제사상에 원래 그 날 아침에 시켜먹으려고 했던 우육탕을 좀 올리고 싶었다. 그러나 집에서 버스를 갈아타며 한 시간 정도를 가야 하는 봉안당까지 집에서 시킨 우육탕을 가지고 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나는 그냥 제삿상에는 그가 좋아하던 버터크림빵만 올리고 우육탕은 시켜서 나 혼자 먹었다. 그 점이 내내 아쉬웠다. 차가 있었으면 그래도 좀 쉽게 가져갈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두어달 남짓 남은 그의 1주기때도 비슷하겠지.


늘 이런 식이다. 그의 곁에서 20여년을 살면서 그가 나를 위해 해주던 모든 것에 알게 모르게 길이 들어버린 나는 때때로 이런 순간을 마주하고, 그 때마다 그의 부재를 실감한다. 그리고 한참이나 남은 나의 홀로서기를 실감한다. 언제쯤 되면 이런 철없는 생각 없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식으로 알아서 척척 잘 하면서 살게 될지. 스스로 생각해도 좀 요원해 보여서 제풀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꼭 차가 있고 없고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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