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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을 끊은 지가 본의 아니게 1년쯤 되었다. 짜장면에 특별한 원수가 졌다거나 혹은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현재 내가 먹고 사는 스케줄에 뭐가 잘 맞지 않기 때문에 배제된 것에 가깝다.
짜장면은 내게는 참 애매한 음식이다. 좋고 싫고의 문제는 아니다. 짜장면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으니까. 다만 문제는 내가 짜장면의 남은 양념에 밥을 비벼먹는다거나 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짜장면은 내겐 면만 호로록 건져먹고 치우기엔 좀 양이 적어서 탕수육이든 뭐든 사이드를 꼭 같이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그러던 음식인지라 그가 떠나고 난 후의 짜장면은 여러 가지로 양으로나 가격으로나 뭐가 잘 맞지 않는 애물단지가 되어 내 식단에서 자의 반 타의 반 밀려났다.
며칠 전 마트에 주문을 했는데 몇 가지 물건이 품절로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빠진 물건들을 사러 집 근처 마트까지 발품을 팔아 가야 했다. 늘 그렇듯 마트라는 곳은 돈이 없어서 못쓰는 곳이지 살 게 없어서 못 쓰는 곳은 아닌 관계로,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다 떨어져 가고 하는 식으로 물건을 담다 보니 금세 카트는 수북하게 불어났다. 그렇게 마트 안을 빙빙 돌다가 나는 할인 코너에서 한 팩에 2천 원이 조금 넘는 짜장라면을 발견했다. 아, 싸다. 근데 이거 사가서 어디다 쓰지. 나 짜장면에 밥 안 비벼먹는데. 그렇다고 기생충처럼 채끝살까지 사다 놓고 매번 곁들여서 끓여 먹자니 배보다 배꼽이 크고. 아무리 생각해도 계산이 나오지 않아 기껏 집었던 것을 놓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결국 나는 계산대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할인코너에 가서 내려놓았던 짜장라면을 다시 집어서 들고 왔다.
출출한 오후가 되어서, 오늘은 다른 간식은 일체 생략한다는 각오로 사 온 짜장라면 하나를 끓였다. 나는 언제나 그 면을 다 삶은 후 '물을 한 스푼만 남기고' 버리라는 그 지시 사항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해서 면이 양념에 비벼지지 않을 정도로 바싹 마르거나 혹은 그의 말을 빌자면 '국물 짜장면'이 될 정도로 흥건해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약간 면을 덜 익힌 후에 대충 물을 조금 많이 남긴다 싶을 만큼 버리고 스프를 넣고 약불에 볶아서 물을 졸인다. 이렇게 하면 그나마 적당한 짜장라면을 끓일 수가 있다. 어제도 그런 방식으로 실로 오랜만에 짜장라면을 끓였다. '끼니'로 먹기엔 애매하던 것이 간식으로 먹는다 생각하니 아주 훌륭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좀 사다 놓고 가끔 끓여 먹을 걸. 그런 생각을 했다.
그가 떠나면서 함께 내 삶에서 사라졌던 것들은 이제 하나씩, 느리지만 천천히 제 자리를 찾고 있다. 그 사람 하나만을 빼고. 조금은 씁쓸한 이야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