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소고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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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소셜 커머스의 핫딜 탭을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것이 소소한 삶의 재미이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좀 싸다 싶은 물건을 발견하면 보물찾기 하던 어린애처럼 큰 소리로 그를 불러 뭐가 얼마에 나온 게 있는데 살까? 하고 묻는 것이 통례였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산 물건들 중 몇 가지는 급작스레 그가 떠나버린 다음날, 혹은 그다음 날 차례대로 배송돼 두고두고 내 마음을 아프게 했었다.


요즘도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핫딜 탭에 들어가 이것저것 두리번거려 본다. 그리고 만원 남짓하는 물건이 있으면 살 때도 있다. 주로 감자를 그런 식으로 구입하고 있는데 썩 나쁘지 않은 편이다. 감자를 5킬로그램 정도 재놓는 것은 생각보다 꽤 든든한 기분이라 이래서 감자를 구황작물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농담을 그의 사진을 향해 할 때도 있다.


며칠 전에는 200그램에 만원이 채 안 하는 한우 양지살이 올라왔기에 잠깐 정신을 놓고 앞뒤 안 가리고 사 버렸다. 그리고 그저께 배송이 왔다. 거 참, 무려 한우 양지를 이 가격에 산 건 좋은데 이걸로는 도대체 뭘 하면 되려나. 그래도 가장 효용도가 높은 것이 국을 끓이는 것이라 소고기 뭇국을 끓이기로 했다. 고향에서 먹던 방식으로 고춧가루 듬뿍 넣어서, 얼큰하게.


다만 그랬다. 소고기 뭇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무도 필요하고 콩나물이든 숙주든 둘 중 하나도 약간 있어야 하는데 둘 다 현재 상태로는 집에 없었다. 무는 얼마 전까지 조금 남아 있던 것을 부러 다 먹어 없앴고 콩나물이나 숙주는 워낙에 보관이 쉽지 않은 식재료라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사지 않기 때문이다. 귀하신 한우 양지님을 모셔놓고 무니 숙주니 따위가 없어서 국을 못 끓인다는 것도 우스워서, 결국은 마트로 무와 숙주를 사러 갔다. 갈 때는 정말로 그것만 살 생각이었다. 정말로.


가는 김에 사 올 것이 있나 싶어 냉장고를 열어보고 나는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본적으로 재놓는 양파와 대파가 둘 다 거의 다 떨어지고 없었다. 그럭저럭 사다 놓는 표고버섯도 다 쓰고 없었다. 계란도 두 알 정도가 남아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니, 장 본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래. 한참을 투덜거렸지만 나밖에 없는 집에 남아있으면 내가 먹지 않은 거고 없어졌으면 내가 먹은 것이니 어디다 불평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트로 가서 거의 5만 원에 육박하는 돈을 쓰고 왔다. 당초 '싸게 산' 한우 양지로 '쌈직하게' 끓여 먹으려던 내 계획은 장렬하게 실패한 셈이다.


소고기 뭇국은 그가 떠난 뒤로 이번이 세 번째인지 끓여 먹는 것 같다. 근 1년 동안 세 번이면 거의 분기별로 한 번씩 끓여 먹었다는 말이 되는데 그나마도 경험이라고 처음 끓이던 때에 비해 프로세스도 꽤 간결해졌고 맛도 훨씬 먹을 만 해졌다. 그렇게, 나는 봄의 첫날을 싸지 않은 싼 소고기 뭇국으로 때웠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한 끼 잘 먹고 치웠으면 됐지, 그만 좀 툴툴거리라고 그는 그렇게 말할 것 같다. 그래도 꽤 대견하게 생각해 주지 않을까. 다 키웠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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