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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후 스포츠 채널에 고정된 우리집 텔레비전은 내내 그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다. 가끔 10년쯤에 방송된 개그콘서트의 재방송을 하는 시간에 잠깐 다른 채널로 옮겨가긴 하지만 그게 끝나고 나면 여지없이 제 자리로 돌아온다.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개그는 역시 올드스쿨 개그가 진국인 것 같다.
요즘은 주로 농구를 한다. 국내농구도 하고 NBA도 한다. 얼마 전 슬램덩크를 보고 온 탓인지 요즘은 괜히 농구도 반가워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아 쟤는 누구 같고 쟤는 누구 같네 하는 식으로 슬램덩크의 캐릭터들을 제멀대로 끌고 나와 짝을 맞춰보기도 한다. 새벽시간쯤에는 동아시아 슈퍼리그라는 걸 하던데, 잘은 모르지만 아마 유럽축구의 챔피언스 리그마냥 동아시아 각 리그의 상위권 팀들끼리 하는 리그인 모잉이다. 어제는 안양KGC가 상대 팀을 119대 69인가까지 앞서는 걸 보다가 잤다.
그리고 오전에는 메이저리그 시범경기가 방송된다.
아, 벌써 시범경기 하는 시즌이 되었나. 그도 나도 고향이 부산이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부산은 야구 좋아해서 야도(野都)이고 야당 도시라서 야도(野都)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야구를 놓은 지 몇 년 되기도 했고 부산을 떠나온 건 20년도 넘어서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산에 살면서 야구에 완전히 무관심하기는 쉽지 않다. 사직구장까지 쫓아가 고함을 지르며 야구를 보느냐 텔레비전을 보는 가족의 어깨 너머로 보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 곳에서 20년을 나고 자란 덕분인지 나에게 야구는 그냥 스포츠라기보다는 길에 피는 꽃들처럼 일종의 시간의 흐름과 같이 생각되는 점이 있다. 시범경기가 시작되면 아 이제 봄이구나 하는 실감이 나고 포스트 시즌이 시작되면 이제 좀 있으면 연말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시범경기 일정이 어떤가는 모르겠지만 메이저리그가 시범경기를 시작했으니 곧 시작되지 않을까.기분이 내키면 집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연고팀 홈 구장이 있으니 거기라도 바람 쐴 겸 다녀와 볼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 근처에 괜찮은 커피 원두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그 집에도 들러서 케냐 뉴크롭도 사고.
좀 면목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그렇게 나 좋은 짓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