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날이 따뜻했다

-328

by 문득

나 혼자 먹기 위해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 생각하기 따라서는 세상 귀찮고 영양가 없는 일이다. 설거지쯤 가버리면 더욱 그렇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도 아닌 오직 나 하나 먹자고 귀찮게 밥을 하고 밥 먹고 난 그릇들을 치우는 일은 가끔 세상에서 제일 귀찮다. 그냥 나 하나 굶으면 속 편하게 해결될 일이다 싶은 마음이 들어버리면 더욱 그렇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지면 뭘하나. 달에, 화성에 사람이 가는 세상이면 뭘하나. 한 알 먹고 삼시세끼 안 먹어도 되는 그런 약 하나 못 만드는데. 몇 개 나오지도 않은 그릇 설거지를 하는 게 세상 끔찍하고 귀찮게 여겨져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젠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하기 때문에. 이대로 퍼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지기 전에 후다닥 치우고 마트나 구경하러 가자. 그렇게 나 자신을 다독였다. 혼자 산다는 것에는 몇 가지 위험한 요소들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한 번 풀리기 시작했을 때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귀찮다고 밥을 굶어도, 며칠씩 청소를 하지 않아도, 하루종일 잠만 자도 아무도 옆에서 너 그러면 안 된다고 말려주지 않는다. 스스로가 정신을 차리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꾸역꾸역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간만에 바람도 쐴 겹 마트나 구경하러 가기로,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때였다. 날도 따뜻해 보이는데 그냥 후드티나 하나 입고 나갈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겨우내 나는 아주 추운 날은 롱 패딩을, 그렇게까지 춥진 않을 때는 후드 부분에 털이 달린 두터운 접퍼를, 집 근처 백 미터 정도의 반경 안에 나갈 때는 플리스 가디건을 입고 다녔다. 오늘도 원래라면 버릇처럼 점퍼를 꺼내 입고 나갈 참이었다. 그러나 나가보지 않고 창밖으로 보기만 해도 날이 꽤 따뜻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안감에 기모 처리가 된 좀 두꺼운 후드티 하나만 주워 입고 집을 나섰다. 주우면 다시 와서 아무 거나 껴입고 가지 뭐. 그런 각오로.


웬걸. 점퍼씩이나 입고 나왔으면 제법 후끈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이니 한참 하루 중에 가장 날씨가 따뜻할 때여서 그랬겠지만 이제 정말로 겨울은 가고 없었다.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많이 가벼워져 있었다. 마트로 가는 길가에는 예전에 그와 종종 와서 하나씩 사 먹던 핫도그 가게가 있었다. 조금 전에 밥을 먹었는데도 갑자기 핫도그가 먹고 싶어져서 감자 핫도그 하나를 샀다. 그리고 설탕에 케첩까지 야무지게 발라서 어린애처럼 한 입씩 베어 먹으며 가던 길을 마저 갔다.


가끔은 미안하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너무나 멀쩡하게 살아있어서. 살아가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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