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이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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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가 떠난 후 한동안, 이래서 조선 시대에 가족이 죽으면 삼 년 상을 치렀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3년은 일종의 '보호기간'이 아니었을까. 이 사람은 아버지를, 어머니를, 남편을, 아내를 떠나보낸 사람이니 3년 정도는 그냥 건드리지 말라는. 그냥 그 3년간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슬픔에만 잠겨 있으라는.


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을 잃었는데도 내 삶은 꾸역꾸역 굴러가고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는 계속해서 내 뒤통수를 잡아당긴다. 아니 그래. 너 슬프지. 슬프겠지. 근데 그건 그거고. 이런 말들을 늘어놓으며 운동화 밑창에 낀 작은 돌조각처럼 들러붙는 많은 일들이 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참고 또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힘들어지면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잠자리에 든다. 혼자만 좋은 데 가서 그러고 있지 말고 제발 나도 좀 데려가라고.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잘 넘기면 그래도 주말까지는 좀 마음이 편할 수 있었는데, 오후 다섯 시가 넘어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모든 건 다 엉망이 되어버렸다. 딱 한 시간이었는데. 한 시간만 더 무사히 넘어갔으면 최소한 일요일 밤까지는 잠시나마 편할 수 있었는데. 그 사실이 못내 억울하고 원통했다. 물론 얄팍한 이야기다. 그 전화는 그 시간에 오지 않았으면 정황상 월요일 오전 중에는 걸려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시간차의 문제일 뿐 사라지지는 않는 성질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한 시간의 시차로 잠시나마 누릴 수 있던 주말의 평화를 빼앗겨 버린 것이 못내 억울하고 분했다.


그래서 오늘도, 이 글을 다 쓰고 난 후 그에게 이르러 갈 생각이다.


이건 이랬고, 저건 또 저랬고, 그건 그랬어야 하는데 뭐가 여의치 않아 그렇지 못했다 운운. 그런 말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힘들어 죽겠고 무거워 죽겠고 서러워 죽겠다는 푸념을 한참이나 늘어놓고 올 생각이다. 이게 다 오빠 때문이라고. 집에 남자가 없으니까 세상이 혼자 사는 여자라고 깔보고 이러는 게 아니냐고. 이거 다 어떡할 거냐고. 책임지라고. 내 옆에 있으면 이런 일 해결하는 거 못 도와줄 거 같으니까 거기로 가버린 거 아니었냐고. 그런 거면 나 좀 도와주라고. 짬밥이 짧아서 그런 거 할 권한이 없는 거면 와서 그냥 나 좀 데려가기라도 하라고. 나 정말 힘들고 무서워서 못 살겠다고.


남들은 백 살까지 사느니 마느니 하는 세상을 반도 못 살고 간 사람의 평온한 안식을 이런 식으로 훼방 놔서 될 일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뭐 어떡해. 내가 이런 걸 일러바칠 데가 거기뿐인데.


그러게, 왜 나만 이 풍진 세상에 남겨놓고 그렇게 쏜살같이 내뺐냐고. 이 무정한 사람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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