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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년 남짓, 한 달에 두세 번 꼴로는 그가 잠들어있는 봉안당에 갔다. 뭐 핑계는 다양하다. 달이 바뀌어서. 뭐 좀 갖다 놓으러. 무슨 날이어서. 힘든 일이 생겨서. 좋은 일이 생겨서 등등등. 그러나 그렇게 간 봉안당에서 근처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본 건 설과 추석 때를 제외하면 겨우 두 번 정도뿐이다.
그리고 어제는 그런 희귀한 날 중 하나였다.
이제 한 네댓 살 정도 되었을까 싶은, 뺨이 통통한 귀여운 남자아이를 데리고 온 여자분이었다. 아이는 데스크에서 파는 조그만 꽃장식을 손에 들고 있었고 어머니가 가르쳐주는 대로 봉안당 앞에 놓았다.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아이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꾸벅, 무슨 유치원 선생님에게 인사라도 하듯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니 그렇게 말고. 절 해야지 절. 아이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나는 때마침 내 징징거림을 다 끝낸 차였고, 아무래도 장소의 특성상 근처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조금 꺼려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라 그에게 화이트 데이에 또 오겠다는 인사를 건네고는 살짝 자리를 빠져나왔다.
봉안당을 나와 비탈길을 내려오는 내내 그 모자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아이가 그렇게 어린 것을 보니 부군 되시는 분의 나이도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어린아이에게 아빠가 이젠 우리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걸 그 어머니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설명했을까. 그 아이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고는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그 댁에는 어쩌다가 그런 슬픈 일이 일어났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는 잠시 괴로워졌다.
그래서 나는 또 그런 생각을 한다.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내게 내가 온전히 책임지고 양육해야 할 작은 생명이 있지 않아서 참 다행한 일이라고. 나는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슬픔과 외로움을 그 아이에게서 위로받고 보상받으려고 달려들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아이에게 상실과 부재를 제대로 가르칠 만한 어른이긴 한 걸까. 그런 것에 생각이 미치면 고개를 내젓게 된다. 얼마 전 보고 온 슬램덩크의 태섭이네 어머니 얼굴도 떠오른다. 나는 과연 그녀처럼, 사춘기를 맞아 방황하는 아들과 어른스럽지만 그래도 어린 딸을 무사히 잘 키워낼 수 있을까.
눈을 뜨고 숨만 쉬면 살아지는 거라지만, 그래도 산다는 건 참 어렵다. 매 순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