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국물도 없는 화이트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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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같이 보낸 시간이 20년을 넘어가면서 우리는 더 이상 날짜를 세지 않게 되었다. 가끔은 연수도 헷갈려서 올해가 21년 째이던지 22년 째이던지 그런 것도 맨날 헷갈리곤 했다. 크게 의미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영원히 1씩이 보태질 뿐일 테니까. 그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식으로 끊길 거라고는, 그도 나도 아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스무 살이 되고 난 후로 처음 맞는, 아무에게서도 사탕 비슷한 걸 받지 못하는 화이트 데이가 될 예정이다.


이제 와서 그게 뭐 새삼 섭섭하고 슬프지는 않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의 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는 누가 누구에게 뭘 사주는 날이 아니라 그냥 그 핑계를 대고 같이 초콜릿이나 캔디를 사서 나눠먹는 날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그날 그렇게 갑자기 훌쩍 떠나버리지 않았더라도 오늘쯤 우리는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알록달록하게 포장된 초콜릿이나 사탕을 '우리 돈'을 주고 사서 너 하나 나 하나 하는 식으로 나눠 먹었을 거다. 이미 몇 년 동안이나 내내 그러했듯이. 다만 올해는 그런 세레모니를 같이 할 사람조차 없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글을 써놓고, 며칠 전에 이미 갔다 온 봉안당에 또 다녀올 생각이다. 가서 생떼나 좀 실컷 쓰고 오려고 한다. 사탕 어딨어. 사탕 내놔. 나 오빠 옆에 너무 오래 붙어있어서 이제 오빠 아니면 의리사탕 주는 남자사람 하나 없는 거 잘 알면서. 그러니까 사탕 내놔. 빨리 내놔. 하다 못해 고깃집 박하사탕이라도 하나 내놔 봐. 그런 강짜나 실컷 부리고 오려고 한다. 사는 건 여러 가지로 피곤하고 매일매일의 스트레스를 껴안고 끙끙 앓으며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혹시나 가서 그렇게 좀 푸념이라도 쏟아부으면, 저 어설픈 녀석이 혼자 남아서 욕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 끝에 그가 뭐라도 해줄지도 모르니까. 아니, 할 수 있기만 하다면 틀림없이 그럴 사람이니까. 이미 내 곁에서 내가 사는 걸 지켜봐서 내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도 다 알고 있겠지만.


곁에 있을 때 조금 더 아꺄주고 사랑해 줄 걸 그랬다는, 늘 하던 생각을 오늘도 한다. 내 곁에서 고작 만 일도 살지 못하고 떠나버릴 걸, 예전의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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