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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조금 따뜻해져서 집안 곳곳을 찔끔찔끔 치우고 있다. 그가 하듯이 하루 날을 잡아 집안의 문이란 문은 다 열고 확 뒤집어엎고 치우는 것은 감히 엄두가 안 나 하지 못하고, 오늘은 여기를, 내일은 저기를 하는 식으로 조금씩 치우는 것이다. 이래 가지고 뭐가 치워지긴 하나 싶은 회의적인 마음도 아예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단 나으려니 하는 자기 합리화는 덤이다.
어제는 욕실을 치울 차례였다.
생각보다는 별로 치울 것이 없었다. 씻고 나올 때마다 조금씩 치워서 그런 모양이다. 곰팡이 제거제를 사고 난 후 변기며 벽 구석진 곳에 몇 번 뿌려두었던 것이 효과가 있는지 생각보다는 별로 크게 치울 곳이 없어서 만족하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배수구 덮개를 들어내고 배수구에 걸려있는 머리카락만 좀 끄집어내면 될 참이었다. 이것도 뭐. 머리를 감고 나서 덮개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매번 손으로 긁어내 치우니까 아예 깨끗하진 않겠지만 별 것 없겠지. 뭐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고 배수구 덮개를 들어내는 순간.
난 내가 그간 처녀귀신과 동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절할 뻔 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가발을 한 채 만들어도 되겠다 싶을 만큼의 머리카락이 배수구에 엉겨 붙어 있었다.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그럼 내가 그간 그렇게 긁어다 버린 머리카락 말고도 내 머리카락이 이렇게나 많이 빠졌다는 건가.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탈모라도 온 건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북한 머리카락을 빼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근처에 낀 물때를 닦아서 치우는 내내 당혹스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그가 떠난 후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욕실을 쓰고, 무슨 오기가 나서 그랬는지 욕실 여기저기를 닦고 배수구 뚜껑을 열었을 때 머리카락 한 올 붙어있지 않은 배수구를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원래 그런 뒷손이라고는 없는 인간이니 그 배수구를 그렇게 치운 사람은 그였을 것이다. 며칠 안에 자신이 내 곁을 떠나게 될 줄 알고 한 일이든, 그걸 모르고도 그 좋지 않은 몸상태에 미련하게도 그런 것까지 치운 것이든, 어느 쪽이든 간에. 그랬던 배수구에 처녀귀신 하나가 살도록, 나는 참 무디고 둔하게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힘을 내야겠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