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꽃을 사다 꽂기 시작했을 때는 사온 꽃들의 반 이상이 시들 무렵 새 꽂을 사 왔다. 그러다가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든 꽃에서는 에틸렌이라는 노화를 촉진하는 물질이 나오고 이 물질이 근처에 있는 다른 꽃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썩은 사과를 골라내지 않고 그냥 두면 근처의 사과들까지 썩게 되는 것과 같은 원래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난 후 나는 매일 아침마다 꽃병에 물을 갈면서 시든 꽃들을 눈에 띄는 대로 따내는 작업도 같이 하고 있다.
그 예외가 장미다.
나는 원래 장미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그의 책상에 놓을 꽃으로도 꽤나 늦게 처음 사 온 편이었다. 가장 처음 사 왔던 장미는 소위 자나장미라고 불리는 작은 봉오리에 송이가 많이 달린 미니장미였다. 그 장미를 사 와서 꽃병에 꽂아 놓고 나는 손이 가는 대로 시든 꽃잎들을 따서 버렸다. 그 장미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한동안은 장미를 사지 않았다.
그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 건 꽃집 사장님과 좀 친해지고 난 후였다. 딱히 살 꽃이 없어서 장미 한 다발을 사들고 돌아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사장님은 겉잎 떼지 마시라고 한 마디 덧붙이셨다. 그게 시든 게 아니고 장미의 떡잎이에요. 말하자면 포장지 같은 건데 그걸 떼버리면 꽃피는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꽃 수명이 줄어들기도 하고 꽃잎이 지들끼리 부딪혀서 상처가 난다거나 하기도 해요. 장미는 지가 다 알아서 하니까 그냥 가만히 두시면 돼요. 그 말에, 어딘가 상처 난 것처럼 보이던 장미의 가장 바깥쪽 꽃잎들을 일부러 더 똑똑 떼내버렸던 일이 생각나 내심 뜨끔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거 따는 거랑 안 따는 거랑 뭐가 그리 큰 차이가 있으려고. 아니, 차이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크게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우리 집에 오는 장미는 기본 2주일 이상은 버티고 있으니까.
지금 그의 책상을 지키고 있는 꽃은 전형적이다 못해 클래식하게까지 느껴지는 빨간 장미다. 미녀와 야수 애니메이션에서 유리관 속에 들어있던 장미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겉잎을 떼지 않은 탓인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장미는 아직도 활짝 피지 않고 3분의 2쯤 벌어진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언제 얼마만큼 피고 언제쯤 질 건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하니까 아침마다 물 가는 거나 잊어버리지 말라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장미는 놔두면 제가 다 알아서 한다. 나도 좀 저렇게 살아야 할 텐데. 가끔은 도에 지나치게 명랑해지고 가끔은 도에 지나치게 침울해지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에 오늘 아침엔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