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남짓 그의 책상을 지키던 프리지아의 생기가 좀 못해진 느낌이어서, 그 핑계를 대고 바람도 쐴 겸 꽃을 사러 나갔다. 내가 기억하기로 1년 전에 프리지아가 시들고 사 왔던 꽃은 스토크였는데 이번엔 어떤 꽃을 사 오게 될까, 그런 기대를 하고.
역시나 어제도 장미가 많았다. 희고 붉고 노랗고 주홍색이 나는, 크고 작은 사이즈의 다양한 모양의 장미들이 있었다. 어제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꽃은 살구색이 나는 라넌큘러스였다. 근데 이건 사 가시면 그리 오래는 못 갈 거라는 사장님의 조언에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던 순간이었다. 아, 그럼 이건 어떠세요. 조금 비싸서 안 권해드리긴 했는데. 사장님은 쇼케이스 구석에서 비장의 뭔가라도 꺼내듯 꽃 한 송이를 꺼내셨다. 크고 넓적한 이파리 위에 마치 잘 익은 복숭아 같은 봉오리가 달린 큼직한 꽃이었다. 이건 뭔가요? 작약이에요. 나는 환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두 말도 하지 않고 작약을 네 송이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꽃을 사면서, 한 번쯤 사다가 집에 꽂아놓아보고 싶은 꽃이 몇 종류 생겼다. 수국, 칼라, 백합, 튤립 등등이 그렇다. 그리고 작약도 소위 그런 리스트에 들어가는 꽃이었다. 크고 화려한 꽃잎이 겹겹이 펼쳐지는, 중국 미인도 같은 데 그려질 법한 그런 꽃. 내가 가진 작약에 대한 인상은 그랬다. 동글동글하게 뭉쳐진 모양이 복숭아 같은 꽃들을 손질해 꽃병에 꽂아 놓으면서, 꽃이 정말정말 크고 예쁘고 탐스러워서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 되실 거라는 사장님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날 늦은 오후쯤. 나름 하는 일에 정신이 없어 부산을 떨다가 그의 책상 쪽을 돌아본 나는 헉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봉오리였는데. 이거 언제쯤 피려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한나절 사이에 작약 네 송이가 전부 피어 있었다. 한 송이 한 송이가 아기 얼굴만한 꽃이 네 송이나 만개한 장면은 장관이긴 했는데, 가만있자. 내가 또 뭘 잘못했나. 나는 생전 하지 않던 짓으로 꽃집에 전화까지 했다. 사장님 아까 작약 사간 사람인데요. 분명히 봉오리를 사 왔는데 얘네 벌써 다 폈어요. 제가 또 뭘 잘못한 건가요? 나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 꽃대 잘라서 꽃병에 꽂아놓기만 했는데요. 사장님은 한참을 웃더니 '원래 그런 것'이라고 대답해 주셨다. 요즘 날이 덥고 따뜻해서 그럴 거예요. 댁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그냥 열심히 보시면 됩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안심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아직도 당황스럽다. 큰 꽃들은 대개 피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데려온 지 한나절만에 저렇게 다 피어버리는 꽃은 정말이지 처음 봐서. 그 하늘하늘한 자태와는 다르게, 궁중에서 태어나 아버지 황제의 사랑만 듬뿍 받고 자라 다소 철이 없는 막내둥이 공주님 같기도 하다. 아무려나, 구름같이 피어 있는 작약을 보니 현생에 무슨 일이 있든 잠시 기분은 흐뭇하게 좋아지긴 한다.
순식간에 만개한 작약만큼이나 이 봄엔 좀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주 조그만 일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