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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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요즘 사 오는 꽃들은 하나같이 일주일이 한계다. 날이 너무 더운 탓일 거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 아침에 꽃병에 물을 갈아주면서 얼음을 넣어주는 등의 신경은 쓰고 있지만 사람도 견디기 힘든 이런 더위를 뿌리까지 잘려버린 그 연약한 꽃들이 일주일 이상 배겨내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모양이다. 서늘할 때라면 열흘 정도는 넉넉하게 버텨주는 장미가 일주일을 겨우 가는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제도 새 꽃을 사러 갔다. 새 꽃을 사러 가는 길이 설레는 건 오늘은 돌아올 때 어떤 꽃을 사 가지고 돌아오게 될까 하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무슨 꽃을 사 와야겠다고 미리 계획을 세우고 가는 건 별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지난 1년을 보낸 나의 결론이었다. 장미 정도를 제외하면 사시사철 언제나 있는 꽃은 드물고, 그나마도 시기에 따라, 혹은 꽃집이 도매 시장에 언제 가느냐 등에 따라 꽃집의 구색은 늘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도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꽃집에 갔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나는 나의 오래된 로망 중 하나이던 백합을 사 와서 꽃병에 꽂았다.


유독 좋아하는 꽃들이 있다. 백합이나 수국, 칼라 같은 꽃들이다. 그러나 큰맘 먹고 산 수국에 너무나 한 번 호되게 당하고부터 나는 '크고 예쁜 꽃'에 조금 겁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해바라기며 튤립, 작약 등의, 크고 예쁘지만 시드는 모습이 너무 서글픈 몇몇 꽃들을 보면서 더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그간 백합은 일부러 피해 가며 사지 않은 이유도 조금 있었다. 그러나 어제는 다른 꽃들의 구색이 많지 않기도 했고, 이쯤에서는 한 번쯤 사 오고 싶다는 생각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한 다발을 사 와서 꽃대를 다듬어 그의 책상에 꽂아두었다.


어릴 때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우아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은 작은 방 가득히 백합을 채워놓는 거라는 말이 있다. 백합의 향기에 질식해서 죽게 된다던가. 조금 머리가 굵어진 지금은 무슨 과학적인 근거씩이나 찾지 않아도 그게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만큼 그 향이 짙고 강하기 때문에 나온 말일 거라고는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진짜 백합의 향이 어떤 건지 모른다. 내가 아는 백합의 향이란 죄다 비누나 바디워시 같은 데서 맡은 사람이 만든 향뿐이다. 이번에야말로 사람도 죽일 만큼 강렬하다는 백합의 향을 좀 맡아볼 수 있을까.


사온 백합은 대부분이 봉오리고, 활짝 핀 것이 한 송이, 반쯤 핀 것이 또 한 송이 정도다. 부디 저 맺혀있는 봉오리들이 다 만개할 동안만 내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이 더운 날씨에, 쉽지는 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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