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아신스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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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흔히 꽃이라고 하면 두 가지를 연상하게 된다. 색깔과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지만 어쨌든 그 곱고 아름다운 형태, 그리고 향기다. 뭔가 향긋하고 좋은 냄새를 맡았을 때 관용적으로 '꽃향기'에 비기게 될 정도로 향기는 꽃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적어도 내 관념 속에서는 그랬다.


그러나 1년 넘게 50여 가지의 꽃을 사다가 그의 책상에 꽂아놓아 보고 내린 결론 중의 하나는 꽃의 향기란 의외로 그리 대단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은 꽃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인간인 나에게 하등 잘 보일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모른다. 꽃이 잘 보여야 하는 대상은 역시 수정을 시켜줄 나비나 벌 종류이지 저들을 함부로 꺾어다 꽃병에 꽂아놓는 인간이 아닐 것이며, 그래서 그 향기라는 것도 굳이 인간의 후각 따위를 기준으로 삼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꽃의 향기란 그렇게까지 드라마틱한 무언가는 아니며, 그 근처에 가서 코를 처박다시피 들이대고 맡아야만 겨우 맡을 수 있는 아주 미미한 어떤 것이다. 심지어는 그나마의 향기조차도 잘 느끼기 힘든 꽃들도 적지 않다.


내 기준에서 뚜렷하게 향기가 좋다고 할 만한 꽃은 스토크라고도 불리는 비단향꽃무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 목록에 어제 사온 히아신스가 추가되었다. 하루 문을 닫고 외출했다 돌아왔더니 장미가 죄다 시들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꽃집에 가서 다른 꽃을 사 왔다. 쇼케이스 한 구석에 달려있는 올망졸망한 흰 꽃이 눈에 들어와서 얘는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았다가 히아신스라는 답을 들었다. 히아신스라면 태양의 신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던 한 미소년이 죽어서 된 꽃이라고 그리스 신화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꽃이 이렇게 생겼구나. 나는 한참이나 그 꽃의 모양을 바라보다가 몇 송이를 사서 집으로 가져왔다.


일견 작고 소박해 보이는 이 꽃의 진가는 그 향기에 있었다. 저녁이 되니 방 안에 자욱하게 향이 퍼져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의 책상 곁을 지나갈 때마다 은근한 향이 피어올라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감탄하다가 꽃병에 코를 대고 향을 맡아보기도 했다. 몇 송이 되지도 않는 꽃에서 이렇게 짙은 향기가 나는 것이 신기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요즘은 아침에 물을 갈아주면서 얼음 몇 조각씩을 꼭꼭 넣어주고 있다.


새 꽃을 사다 꽃병에 꽂으면서 늘 이번 꽃도 오래갔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고 이번 히아신스는 그 향기 덕분에 더욱 그런 마음이 간절하다. 부디 조금이라도 오래 내 곁에 살아서, 생각지도 못했던 그 향기를 오래오래 내게 나눠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히아신스의 입장에서 나는 하등 잘 보일 이유가 없는 생물이겠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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