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당신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May 20. 2023

국화는 국화다

-402

그의 책상에 이런저런 꽃을 사다 꽂은 지 1년이 넘었다. 그러는 동안 나름의 꽃을 보는 식견이 조금 생겼다. 다른 게 아니라, 오래갈 것 같은 꽃과 그렇지 않은 꽃을 구분하는 촉이랄까. 아, 물론 꽃병에 꽂은 꽃이 얼마나 가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꽃의 상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다. 내가 말하는 건 종의 특성이랄까 그런 부분의 이야기다.


얼굴이 큰 꽃은 대개 오래가지 못한다. 얼굴이 큰 꽃들은 시들어가는 티가 너무나 명확하게 난다. 이건 결국 지난주에 테스트해 본 해바라기도 크게는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지는 순간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꽃을 버릴 때 조금 더 마음이 아픈 느낌도 있다. 꽃잎이 하늘하늘하고 청순한 꽃들도 썩 오래가지 못한다. 이런 녀석들의 경우는 '시든다'기보다는 '마른다'는 느낌으로 수명이 다하는 경우가 많다. 줄기가 가늘고 여리여리한 꽃들도 오래가지 못한다. 꽃병에 꽂고 나서 사나흘 정도가 지나면 줄기 꽃을 자를 때 가위의 감이 조금 달라진다. 그리고 급속도로 시들기 시작한다. 뭐 대충 이런 식이다.


이런 것 저런 것을 다 따졌을 때, 사다 놓으면 정말 오래가는 꽃을 꼽자면 단연 장미, 그리고 국화다. 그러나 장미는 꽃의 생긴 모양상 시드는 티가 좀 많이 나는 편이고, 그런 기색도 없이 꼿꼿하게 버티는 걸로는 역시나 국화를 따라갈 꽃이 드물다.


지난주 사 온 해바라기는 꼬박 닷새 정도를 갔다. 닷새가 되는 날 아침에 꽃잎 몇 개가 젖혀져 있기에 살그머니 손으로 당겼더니 너무나 쉽게 떨어지는 것을 보고 얘는 오늘 아니면 내일쯤 수명이 다하겠구나 싶어 부랴부랴 옷을 주워 입고 꽃집에 갔다. 이번 주는 스승의 날이니 뭐니 해서 꽃이 다 빠지고 남은 꽃이 얼마 없는데, 수요일쯤에 오시면 안 되겠느냐고 사장님은 웃으며 물으셨지만 그건 좀 곤란했다. 아닌 게 아니라 쇼케이스 속의 꽃들은 거의 다 빠지고 몇 송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그나마 남아있는 꽃들 중에서 소위 폼폰소국이라고 하는 동그란 모양을 한 소국을 몇 송이 사 왔다. 다른 이유는 없고, 전적으로 가장 오래갈 꽃일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사 온 소국은 지금까지는 시들 기색 하나 없이 그의 책상에서 아주 씩씩하게 잘 버텨주고 있다. 갑자기 훅 더워진 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늘 세어보니 지금 꽂아둔 폼폰소국이 그에게 올린 52번째의 꽃이었다. 이쯤 되면 꽃사진만 정리하는 폴더를 하나 따로 만들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내 곁에서 20년 동안 못 받은 꽃을 1년 동안 몰아서 받은 소감이 어떤지 좀 궁금하기도 하다. 먹지도 못하는 꽃 같은 걸 왜 돈 주고 사냐고, 별로 좋은 소리는 하지 않을 것도 같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익숙해지기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