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러운 입원을 하기 전 이 집에서의 나의 마지막 기억 중의 하나는 소셜 커머스에서 화훼시장 휴식기를 맞아 납품될 곳이 없어진 스프레이 장미를 산 것이었다. 꽃값은 만원에 불과했지만 배달돼 온 장미는 한 다발도 아닌 한아름이어서 처음엔 놀랐고 다음으로는 무척이나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장미를 받고 행복했던 기억은 꽃병에 물 갈아줘야 하는데 하는 생각 따위는 사치로 느껴지는 몇 달을 보내면서 꽃병 속에서 말라죽은 모습으로 되돌아와 나를 슬프게 하긴 했지만.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마련인 존재인 모양이다. 그날 배송돼 온 상자를 열었을 때의 그 당혹스럽기까지 한 행복감을 잊지 못하고 나는 또 비슷한 상품이 없나를 찾으러 소셜커머스를 몇 번이고 들락거렸다. 그러다가 몇 주 전 비슷한 상품을 발견하고 냅다 '질렀다'. 이번 상품은 화훼 시장에 나갔다가 유찰된 꽃들을 처분하는 상품이라는 모양이다. 스프레이 장미로 품목이 딱 정해져 있던 지난번과는 달리 꽃 종류가 '랜덤'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것도 호기심이 갔다. 일종의 요즘 유행하는 럭키 박스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어제, 드디어 약속한 날짜가 되어 꽃이 배송돼 왔다.
오늘 받은 꽃은 가끔 시상식이나 졸업식에서나 보던, '되레 받은 사람이 파묻혀서 안 보일 만큼의 커다란 꽃다발' 같은 느낌이었다. 연보라색 스토크가 한 단, 자주색 소국이 한 단, 커다란 노란 장미가 두 송이, 그만큼 커다란 빨간 장미가 한 송이, 아직 채 피지 않은 백합이 한 송이. 활짝 핀 거베라가 아주 큰 것이 하나, 적당히 큰 것이 하나. 그 정도의 구성이다. 그 꽃들을 하나하나 다듬어 꽃병에 꽂아놓는 것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낙찰된 꽃은 '못난이 꽃'이라고 부른다는데, 내가 봐서는 어디가 못난이라는 건지 모를만큼 다들 예쁘고 고운 꽃들이었다.
보통 내가 사 오는 꽃들은 단일품종의 같은 꽃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 가지 꽃들을 한꺼번에 꽂아놓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무언가 내게 대단히 좋은 일이 있었고 그 일로 인해 축하라도 받은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기야 퇴원을 했으니까 그게 축하받을만한 일이긴 한가.
벌써부터 슬금슬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백합은 저러다가 또 목이 부러지면 어쩔까 걱정스럽고 꽃대가 물러질 거배라도 걱정되고 소리 없이 시드는 스토크도 걱정이다. 그러나 화훼시장에서 직접 온 꽃은, 저번에도 그랬듯이 집 앞 꽃집에서 파는 꽃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서슬이 퍼렇다시피 기세가 당당해사 그것 하나만 믿어보려고 한다.
그의 책상에 꽃을 꽂아놓기 시작한 지 일 년 남짓만에 어지간한 꽃들은 이름도 알고 어떻게 피러 어떻게 시드는지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