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떠나서

-prologue

by 문득

8월이었다. 분명 날씨가 더웠고, 그날따라 외출했던 나는 반팔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리고 석 달간 내가 나와 싸워야 하는 시간을 이기고 돌아온 시간은 이젠 가을이라고는 입에 발린 말로라도 할 수 없는 겨울의 목전이다. 그래서 내게는 올해 가을의 기억이 지워지고 없다.


이상한 일이다. 집 혹은 집에 속한 모든 것들은 분명 무기물일 텐데도, 그것들은 일정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석달 넘게 돌보는 사람이 없던 집은, 그래서 죽어 있었다.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 상해버린 냉장고 속 음식들, 비우지 못한 휴지통들, 1년 넘게 그렇게나 애지중지했으나 말라 죽어버린 화분의 식물들, 꼭 그런 것들이 아니라도 이 집이 통째로 거대한 잠에 빠졌음을 알 수 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엄두가 나지 않아 한참동안이나 문을 연 채로, 집 안에 발을 딛지 못하고 망연히 서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내가 정말로 혼자라는 것을. 이제 내게는 나의 부재를 위해 이 집을 가꾸며 이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그렇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 그것만이, 지난 석달 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내 몸과 싸우며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이 시련은 떠나간 자신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틈만 나면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름을 불러대는 나에게 그가 주는 하나의 답일지도 모른다고. 언제까지 그렇게 징징거릴 거냐고, 이젠 좀 정신차릴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그의 일갈일지도 모른다고. 이제는 네가 너를 돌보면서 살아야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처음엔 아니었지만, 지금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고작 석 달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리셋돼 버렸다. 이 브런치만 해도 그렇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그것부터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만에야, 나는 지금부터 해야 할 이야기는 석달 전 내가 쓰고 있던 순전히 그의 기억 속에 잠겨 그를 그리워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걸어가는 이야기를 써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새 매거진을 만드는 방법부터 그 매거진의 이름을 뭐라고 지었던지, 그런 것들이 싸그리 지워진 듯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아 한참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한참을 헤맨 끝에야, 나는 그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라는 구질구질한 타이틀을 달고 새 글을 시작할 기본적인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처음부터 다시 글을 시작한다.

작년 4월의 어느 아침, 갑작스레 텅 비어버린 내 옆의 빈 공간을 마주하던 그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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