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레 입원을 하고 가장 나를 괴롭힌 건 어이없게도 화분 두 개와 꽃병에 꽂아놓은 꽃들이었다. 심지어 꽃 같은 경우는 어차피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기껏해야 열흘에서 2주가 그네들이 버틸 수 있는 한계였을 것이며, 그 시간이 지난 후에는 내 손으로 잘라 버렸어야 하는 것을 아는데도 그랬다. 내가 내 손으로 선택해 내 곁에 들여놓고도 결국 내가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퇴원을 해 집으로 돌아오고도 단박에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 건, 그 녀석들의 최후를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한 일종의 공포였다. 이런 순간에 와서야 나는 식물 또한 동물과 똑같은 형태의 생명이며 그 주검 또한 사람의 시신과 다를 바 없이―심지어 그날 아침 갑작스레 나를 떠나간 그의 마지막 모습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이 지켜보기에 괴롭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벌레 같은 게 꾀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각오를 하고, 나는 심호흡을 크게 들이쉬고 집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네들은 너무나 곱고 얌전하게, 그 자리에서 말라죽은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화병의 꽃들은 화병의 물이 다 마른 채, 그 자리에 꼿꼿이 선 채 드라이플라워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 장미 한 아름을 받고 내가 얼마나 기뻤었는지, 그런 것들이 생각나 눈앞이 시큰해졌다. 본래도 꽃을 말려두는 것을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젠 정말로 그러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금 더 큰 문제인 화분을 확인하기 위해 집 안으로 발을 옮기는 순간.
무화과는 그 자리에서 무성하던 푸른 잎들이 누렇게 마른 채로 고스란히 말라 있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다육이였다. 그의 삼우제 날 갖다 놓을 꽃 한 다발을 사러 갔던 꽃집에서, 꽃집 직원분이 덤 주듯 줬던 그 죽을지 살지 데려온 지 몇 달이 지나도록 확신하지 못했던 그 다육이는, 잎들이 붉게 변하고 많은 잎들이 말라비틀어져 있을지언정 그래도 살아 있었다. 세상에. 석 달이나 물 한 모금 주지 못하고 볕 한 번 제대로 쬐어주지 못했는데도, 너는 그래도 안 죽고 살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울컥 눈물이 났다.
부랴부랴 물을 떠서 화분에 부었다. 이미 말라죽은 것 같은 무화과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껏, 화분 받침이 넘치도록 부었다. 무화과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라 도낏자루로 만들어 3년을 써도 물만 주면 새싹이 난다는 말이 있다. 물론 그건 과장된 말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순순히 포기해 버리긴 싫었다. 미안해. 미안하다. 근데 내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어. 화분 구석구석이 닿도록 물을 부으며,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 자리에서 말라갔을 두 녀석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다육이에 감돌던 붉은빛이 눈에 띄게 사라졌고 잎들이 통통해진 걸 보고 나는 다시금 눈물을 쏟았다.
그렇구나. 곁에 뭔가를 들인다는 건, 뭔가를 책임지기로 마음먹는다는 건, 그것을 책임지는 나를 책임지기 위해 내가 더 튼튼하고 강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과 결국은 같은 말이었다. 사람도 아니고 살아 움직이는 개나 고양이도 아닌 손바닥만 한 화분 하나조차도 그랬다. 사랑한다는 건, 그래서 곁에 둔다는 건 말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벅차오르는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일단 나를 사랑하고 나를 지켜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걸 이 나이를 먹고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