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장판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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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와 함께 지내던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그땐 이럴 때 어땠더라 하는 것이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많은 순간이 있다. 요즘 같아서는 겨울에 어쨌더라 하는 문제가 그렇다. 우리 집에는 전기장판이니 온수매트니 하는 침대를 덥히는 물건이 없다. 히터나 열풍기 같은 것도 없다. 내복을 입고 홈웨어를 몇 겹이나 껴입고 지낸 기억도 없다. 그렇다고 보일러를 미친 듯이 틀면서 살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 보일러라는 것조차 시공된 지 10년이 훌쩍 지난 낡고 효율 낮은 물건이었으니 얼마 전에 바꾼 새 보일러보다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겨울이랍시고 특별히 꺼내 썼던 것은 각자 하나씩 썼던 고만고만한 무릎담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래놓고도 우리는 매년 겨울을 그다지 춥지 않게 지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었던지, 그걸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심지어 나 혼자 보낸 지난겨울은 어떻게 보낸 건가가 잘 생각이 나지 않으니 가끔은 어이가 없다. 아마 그냥 옷을 몇 겹 껴입고 덜덜 떨면서 어찌어찌 넘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 우리 집은 아흔아홉 칸 고대광실 넓은 집도 아니고 그런 좁아터진 집에 사람 하나가 있느냐 없느냐는 실제적으로 매우 큰 차이가 난다.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도 36도 정도의 복사열을 내뿜는 생체난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와 함께 지내던 때를 기준한 방한법은, 이제 내겐 턱없이 모자라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듯 날씨가 추워졌다. 퇴원이 가까워오던 무렵은 분명히 가을이었는데 병원 밖으로 나와 맞닥뜨린 날씨는 그냥 갈데없는 초겨울이었다. 게다가 석 달이나 비워놓은 집은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좀체로 온기가 올라오지 않았다(물론 이 부분에서는 여름에 온수 전용으로 보일러를 돌려놓은 것을 깜빡 잊고 하루 내내 보일러를 틀어놓고 덜덜 떨고 있었던 나의 멍청함도 한몫했다). 몇 겹씩 옷을 껴입고, 밤에 잘 때는 이불 하나를 더 꺼내 덮어도 추웠다. 제대로 된 겨울도 아닌 예고편쯤에나 해당되는 11월부터 벌써 이래서야 이 겨울을 어떻게 날까.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핫딜로 올라온 전기장판 하나를 샀다. 온수매트나 카본매트니, 별의별 설명이 다 붙은 비싸고 좋은 것들도 잔뜩 있었고 이왕 살 거라면 돈 조금 더 쓰고 좋은 걸 살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이것저것 다 물리고 아주 기본적인 기능만 붙은 것으로, 침대 크기에 딱 맞을 만한 장판 하나를 주문해 침대에 깔았다. 전기장판이라는 걸 도대체 몇 년 만에야 써보는지, 위에 깔 시트가 너무 두꺼워서 온기가 안 올라오면 어떡하나 하는 것부터 온도 조절기가 잘 끼워지지 않아 한참 실랑이를 했는데 그 서슬에 열선이 접혀서 한번 켜보기도 전에 고장이 나면 어떡하나 하는 것까지 온갖 걱정을 다 했다.


자리에 눕기 30분쯤 전 중간 정도로 온도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침대에 눕는 순간, 나는 잠시 갑작스레 입원하게 된 지난여름부터 어제까지, 넉 달 남짓한 시간을 통틀어 가장 행복해졌다. 따뜻한 이불속에 파묻혀 배부른 고양이처럼 뒹굴거리며, 나는 가까스로 다잡아놓은 내 일상을 다시 한번 엉망으로 망가뜨린 지난 몇 달을 깨끗이 잊을 수 있었다. 그냥, 그 한순간만으로도 전기장판을 사느라 예상치 못하게 지출한 그 몇만 원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로 인해 모르고 지나갔던 그 수많은 불편과 어려움들은, 이젠 나 혼자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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