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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이나 비웠다가 돌아온 집은, 딱히 문을 열어놓거나 하지도 않았고 누가 여기서 뭔가를 하지도 않았을 텐데도 소소하게 어질러져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다. 침대에 널브러놓은 여름 이불부터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상해버린 음식들, 집안 곳곳에 뽀얗게 쌓인 먼지까지. 심지어 지난여름에 쓰던 선풍기까지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걸 하루에 다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아서, 오늘은 요만큼 내일은 저만큼 하는 식으로 구역을 나눠가며 며칠에 걸쳐 치웠다.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또 몸살로 드러눕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발목을 잡는 변수가 생겼다. 청소기가 고장 난 것이다. 코드를 꽂고 스위치를 올려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이나 접합부를 다시 끼워보고 필터청소를 해 보고 갖은 짓을 다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 이건 또 왜 하필 이럴 때 사람 애먹이고 난리야. 그렇게 한참을 툴툴거리고, 집안 여기저기 쌓인 먼지를 그대로 둘 순 없는 노릇이어서 걸레를 빨아다 일일이 닦았다. 그러느라고 그날 하루는 꼬박 걸렸다.
이럴 때 만만한 건 그저 인터넷이다. '청소기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증상' 비슷한 키워드로 검색을 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검색을 해서 얻은 결론은, '이젠 고장 날 때가 됐다'는 것과―나는 우리 집 청소기가 자그마치 2008년에 출시된 물건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렇게 오래된 청소기를 굳이 수리하려 들면 부품값이 더 들게 마련이니 그냥 이 참에 새로 사는 게 낫다는 텔레비전 때도 보일러 때도 들었던 비슷비슷한 말들이었다. 청소기를 조만간 바꿔야 되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었고, 다만 이번참에 남들 다 쓴다는 무선 청소기나 혹은 로봇 청소기 같은 걸 하나 사 보면 어떨까 하던 생각을 내심 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인생이 언제나 그랬듯 그런 걸 여유만만하게 준비할 시간 같은 건 별로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당장 청소기가 필요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을 뒤져 제일 싼 가격에 적당한 기본 기능들만 붙어있는 진공청소기 한 대를 주문했다. 배송은 다음날 제깍 왔고, 나는 내심 지난번 쓰던 청소기가 고장이야 고장이라지만 먼지를 빨아들이는 흡입력 자체가 많이 약해져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떠나고 나서 부쩍 집안의 이런저런 물건들이 아이고 난 이제 내 할 일 다 했다는 식으로 드러눕는 일이 잦아졌다. 텔레비전이 그랬고 모니터가 그랬고 보일러가 그랬다. 이번이 청소기 차례인 모양이다. 하기야 지금 나열한 물건들 죄다 제 수명의 한 배 반 정도는 쓴 물건들이니 이젠 그럴 때도 되긴 했다. 그러나 마치 그의 뒤를 따라라도 가려는 듯, 그렇게 약속이나 한 듯 하나하나 수명이 다해 퍼져버리는 걸 지켜보는 기분은 어째 심란하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이런 식으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도 뼈저리게 절감하며 살고 있는데.
끝판왕이 하나 남아 있다. 병원에 석 달 넘게 드러누워 있으면서, 나는 아무래도 이사를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10년 넘게 살아온 이 집과의 이별이 아마 그 대미를 장식하게 될 모양이다. 나는 살아있고, 그래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뭔가를 새로 만나고 그만큼 묵은 것들과 헤어지면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와의 이별 이후 많은 것에 덤덤해져 버린 것은 차치하고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