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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한 번 꼴로 밥을 해서 첫날은 더운밥 이튿날은 찬밥을 먹는 내 패턴은 아직도 그대로다. 물론 내가 그 사이 일 인분 밥도 잘하는 밥솥으로 밥솥을 바꾼 것도 아니고 같이 밥을 먹어줄 룸메나 식구가 생긴 것도 아니니, 이 부분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다.
식은 밥을 처치하는 만만한 메뉴 중의 하나로 볶음밥이 있다. 원래부터도 나는 종류불문 무엇에든 볶은밥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도 게살이 있는 날은 대충 결대로 찢은 게살을 넣고 가끔은 계란물에 미리 밥을 담가 밥알을 계란에 푹 절여서 볶아보기도 하고 또 어디서 배운 레시피대로 잘게 부순 컵라면을 같이 넣어서 볶아보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줘 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볶아낸 밥은, 뭐가 어찌 됐든 대개 그냥저냥 먹고 한 끼를 때울 만하다. 일품요리까지는 아닐지라도.
이 볶음밥을 맛있게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들어가는 재료도 아니고 밥의 상태도 아니며 심지어는 밥 볶는 사람의 기술조차도 아니다. 맛있는 볶음밥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하고도 필요한 요소는 '프라이팬의 상태'다. 프라이팬은 한 번 장만하면 어지간해서는 싫증 나서 버리기 전까지는 계속 쓸 수 있는 냄비 종류와는 달라서 사용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조금씩 코팅이 벗겨지기 시작해서 어느 타이밍이 오면 바닥에 들러붙는 식재료들이 신경 쓰여서 두르는 기름의 양이 점점 많아지는 순간이 온다. 전분기가 많아서 들러붙기 쉬운 밥은 이런 코팅 벗겨진 프라이팬과는 실로 상극이라 할 수 있고, 이런 밥을 그래도 덜 눌어붙게 볶기 위해서는 팬이 흥건하도록 기름을 둘러야 한다. 아무리 볶음밥이란 기름에 볶는 것이 그 요체라지만 기름의 양이 너무 많아져버린 볶음밥은 느끼한 데다 질척거리기까지 해서 맛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가 떠나가기 얼마 전 장만한 프라이팬이 얼마 전부터 거짓말 좀 보태 밥을 볶으면 먹는 것 반 눌어붙는 것 반일 정도로 코팅이 심하게 벗겨졌다는 느낌이 있어 근처 마트에서 세일하는 적당한 프라이팬 하나를 사다 놓은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그렇게 스페어까지 준비해 놓고도 덥썩 폐기처분을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오늘만 오늘만 하면서 계속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쓰고 있었다. 어제는 오랜만에 굴소스까지 듬뿍 넣은 게살볶음밥을 해 먹어 볼 참이었고, 이런 식으로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새로 산 프라이팬은 내년이나 되어야 써보겠구나 하는 생각에 새 프라이팬을 꺼냈다. 원래 쓰던 기름의 절반이나 되는 양을 썼을까 할 뿐인데도 밥 한 톨도 눌어붙는 일이 없이, 딱 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볶음밥이 완성되었다. 역시 맛있는 볶음밥의 첫 번째 조건은 들어가는 재료도 밥의 상태도 아니고 밥 볶는 사람의 기술조차도 아니고, 프라이팬의 상태라던 그의 말은 맞았다.
다만 그렇다. 그가 쓰던, 혹은 그와 함께 쓰던 물건들이 하나 둘 수명을 다해 내 곁을 떠나가고 있다는 건 언제나 참 서글픈 느낌이다. 아마도, 코팅이 다 벗겨져 테두리 가 쪽으로 밥이 다 눌어붙던 그 프라이팬을 내가 여지껏 버리지 못하고 오늘만 오늘만 하면서 계속 쓰고 있었던 건 그런 이유였던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