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하면 그 맛이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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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가끔, 멀리 사는 할아버지를 뵈러 갈 때 아버지와 둘이서만 먼 길을 가게 될 때가 있었다. 어린 내게 우리나라 국토의 거의 끝에서 끝을 가로지르는 그 길은 너무 길고 지루했고, 그래서 '딱 정해진 시간만 가면 되는 데다 차량 안에 화장실도 있는' 기차 쪽이 압도적으로 좋았지만 아버지는 설 추석 등의 아무나 기차표를 못 구하는 시기가 아니어도 고속버스표를 예매해 오시곤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게 다른 이유가 아니라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러 뭔가를 사 먹는 재미 때문이라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눈치채게 되었다. 아버지는 유독 주전부리를 좋아하셨고, 그래서 휴게소마다 들러 가락국수든 김밥이든 뭐든 사드시는 걸 좋아하셨다. 반면에 나는 저런 걸 먹다가 중간에 화장실 가고 싶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입을 꼭 다물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 편이었고, 버스 기사님이 혹시 자리에 안 탄 사람 없느냐고 마지막 점검을 할 때쯤에야 드시던 음식을 다 드시고 저 쪽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아버지는 어린 마음에 좀 창피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주전부리들을 썩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런 나조차도 어쩔 수 없이 사 먹게 되는 휴게소 간식이 있는데, 통감자다. 자잘한 감자들을 삶은 후 녹인 버터와 함께 철판에 볶듯이 구운 후 설탕과 소금을 뿌린 그것 말이다. 그와 함께 고속도로씩이나 타고 멀리 갈 일이 있을 때면 우리는 꼭 중간 휴게소에 들러 이 통감자를 사 먹었다. 조수석에 그 감자를 소중하게 껴안은 채 앉아, 운전하는 그에게 한 개, 내가 한 개 하는 식으로 한 알씩 먹어치우는 것이 나름의 재미였다. 감자를 찍어먹는 용도로 꽂아주는 녹말 이쑤시개는 감자를 다 먹어갈 때쯤엔 끝이 흐물흐물하게 녹아 감자가 잘 찍어지지 않곤 했다. 물론 그가 운전을 그만둔 3년 전(그는 떠나기 1년 전부터 운전을 그만두었다)부터는 고속도로씩이나 타고 어딜 가 본 기억이 없으니, 내 통감자의 추억은 그때 끊긴 게 맞겠다.


얼마 전에 과도한 조회수를 기록한 어떤 글대로, 요즘 뜬금없이 싸게 파는 감자 상품이 자주 나오기도 하고 감자라는 것이 한 박스 재놓으면 이유 없이 든든하기 때문에 잔뜩 사다 재놓고 싹이 난다든가 하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때가 드물지 않게 있다. 그럴 때면 그냥 그런 감자들을 싹 골라내 껍질을 벗기고, 큰 것은 크기 맞춰 적당하게 썰어서 삶은 후 프라이팬에 버터 한 숟갈을 두르고 그 감자를 볶는다. 오래 볶을 필요도 없고 겉이 바삭하게 눌을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게 구워서 설탕과 소금을 뿌리고, 파슬리도 한 꼬집 뿌린다. 그러면 나름 휴게소 통감자 비슷한 물건이 된다. 여기서 비슷한 물건이라 함은 죽어도 그 맛은 안 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뭐 여러 가지가 있을 테다. 만드는 사람의 기술 문제도 있겠고 가정용 프라이팬과 업소용 철판의 차이도 있겠고 조리하는 불의 화력 차이도 있겠지. 하지만 꼭 그것만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집에서 하면 그 맛이 안 나. 어느 예능프로그램에서, 한 방송인이 촬영 중 들른 휴게소에서 통감자를 사서 먹으며 그런 말을 했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 말에 동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건 나도 그랬다. 집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그 맛이 안 나는 휴게소 통감자지만, 그러나 내가 과연 휴게소에 가서 통감자를 먹을 일이 있을까. 아니, 좀 더 정확히는 통감자를 먹겠다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갈 일이 있을까. 뭐 장담하긴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실제로 나는 그가 떠나고 난 후 나 혼자 그럴 일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을 이미 해치웠으니까― 최소한 그게 당분간은 아닐 것은 분명하다. 그때까진 당분간, 그냥 집에서 흉내만 낸 통감자로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럴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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