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대놓고 노린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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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사람이 서른 살이 넘어가면 새로 접하게 되는 노래의 수가 현격히 줄어든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서른 살이었는지 서른다섯 살이었는지 혹은 30도 35도 아닌 다른 숫자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무튼 사람은 일정 나이가 넘어가면 새로운 노래를 접하고 받아들이는 수용력이 현저히 낮아지게 된다는 말이다. 내 경험을 비추어봐도 맞는 말인 것 같다. 특히나 가사 알아듣기 힘들고 노래보다는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요즘 노래들은 더 정을 붙이기 힘들었다.(내가 이런 라떼 발언을 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한편으로는 참 씁쓸해진다) 그래서 그와 나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음악 방송을 챙겨봤다. 어디 가서 '요즘 노래'를 듣더라도 어디서 한 번은 들어본 노래라는 정도의 감은 유지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던 음악방송도, 그가 떠난 후 근 두 달째 한 번도 보지 않고 있어서 나는 그 두 달 사이 어떤 노래들이 나왔고 어떤 아이돌이 컴백했으며 어떤 곡이 1위를 했는가 하는 것 따위를 전혀 모른다. 나의 강제적인 요즘 노래 업데이트는 아이들의 '톰보이' 정도에서 멈추었으므로.


그가 떠나간 후 입속을 맴도는 노래들은 굳이 찾아 듣지 않아도 생각만으로도 떠올릴 수 있는 오래된 노래들이다. 그리고 그 노래들 대부분은 그가 좋아하던 이문세, 이승환, 김광석의 노래들이거나 가사가 아프고 멜로디가 슬픈 노래들이다. 청소를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길을 걷다가 한 소절이 떠올라 흥얼거리던 중에 저도 모르게 울컥 눈앞이 매워오는 그런 노래들. 난 아직 모르잖아요, 옛사랑, 애원, 심장병, 사랑이라는 이유로 같은 노래들. 며칠 전에는 윤종신의 '배웅'을 흥얼거리다가 새삼 가사가 한 글자도 버릴 데가 없어서 한참을 울었다.


늘 하는 집 청소를 대충 해놓고 사전투표를 하려고 집을 나섰다. 해가 본격적으로 나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더울 테니까 그전에 갔다 와야겠다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집 근처 주민센터에 가서 투표를 하고 벌써 문을 열고 장사 준비를 시작한 동네 마트 앞을 지나올 때였다. 문을 열어둔 탓에 매장 안에 틀어놓은 노랫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 괜찮은 거니. 어떻게 지내는 거야. 그런 가사로 시작하는, 세기말 무렵 대한민국을 한 번 들었다 놨던 유명한 발라드를 댄스 뮤직으로 믹스한 곡이었다. 나는 그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사가 너무 노리고 쓴 티가 나서였다. 난 저렇게 '이거 듣고 안 슬프면 넌 사람 아니다' 하고 슬프라고 강요하는 노래는 좀 별로라고 했었고 그는 그 말을 듣고 말없이 웃었었다. 그 모든 순간들이 때 아니게 불어온 바람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리고 그야말로 순식간에, '괜찮은 거니'부터 '그때까지 조금만 날 기다려 줘'까지, 그 노래의 모든 가사들이 누가 머릿속으로 쏟아붓듯 들어와 박혔다. 그리고 난 또 어린애처럼 손등으로 아무렇게나 눈물을 훔치며 울면서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게 네 마음이 아니냐고 묻는 데는. 이래도 안 슬프냐고 묻는 데는. 겪어보니 그런 속 편한 말은 못 하겠지 않느냐고 묻는 데는.


난 정말 몰랐다. 대놓고 노린 가사라고, 그래서 별로라고 말하던 그때는. 이런 식으로 내 이야기가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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