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두부찌개의 마무리는 카레 두 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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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많은 한국 사람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순두부찌개는 그도 나도 둘 다 없어서 못 먹던 메뉴 중의 하나였다. 특히나 날씨가 쌀쌀해져 갈 무렵부터 겨울을 지나 봄까지의 4, 5개월 정도는 특히 더 그랬다. 그리고 순두부찌개를 끓여서 먹을 때마다 그는 둘이서 같이 갔던 순두부찌개 전문점과 거기서 내가 한 삽질을 이야기하며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다. 그 가게에는 갓 끓여 나온 찌개 뚝배기에 직접 깨서 넣으라는 뜻으로 테이블마다 날달걀이 비치돼 있었는데(아마도 사람마다 달걀이 익은 정도에 대한 선호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그 집에 간 날 나는 그게 밥 나오기 전에 집어먹으라는 용도로 놓아둔 삶은 달걀일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는 탁자 모서리에 계란을 툭 부딪혔다가 울컥 흘러나오는 날계란에 당황해 버린 적이 있었다. 나의 쪽팔림은 무덤덤한 얼굴로 깨진 계란을 치우며 '괜찮아요 그런 분들 많아요' 하고 대답하시던 사장님의 대꾸에서 극에 달했고, 그 후로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는 순두부찌개를 먹을 때마다 그 일을 들먹거리며 나를 놀렸었다.


그가 그런 식으로 갑작스레 떠나가고 난 후로도 순두부찌개는 두어 달에 한 번 꼴로는 꼭 끓여 먹는 메뉴가 되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생각보다 조리의 난이도가 높지 않은 것에 비해 쉽게 맛을 낼 수 있고 워낙에 좋아하는 음식이라 이런저런 생각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으며 그냥 한꺼번에 잔뜩 끓여두면 세끼 정도는 반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부엌살림을 하시는 분이라면 이런 메뉴의 존재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 하는 점을 통감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총 세 번 정도를 먹는 순두부찌개는, 처음 끓인 날과 두 번째 먹는 날에는 클래식한 방식으로 마지막쯤에 계란 하나를 넣어서 먹는다. 그가 있을 때는 덜 익은 계란을 질색하다시피 싫어하는 그 때문에 그 계란이 흐물거리지 않도록 푹 익힌 후에야 먹었지만 나는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서 적당히 겉만 익혀서는 노른자를 터트려서 국물에 섞어 가며 먹기도 한다. 그리고 남은 찌개를 떨이하는 마지막 날은 계란을 넣지 않고, 대신에 집에 상비로 준비해 두는 카레 가루를 두 스푼 정도 넣어서 끓인다. 그러면 말 그대로 순두부찌개 전문점 같은 데서 파는 카레 순두부가 된다. 이것은 그가 있을 때는 하지 않던 방법으로, 그냥 내가 혼자서 해 먹는 몇 가지 꼼수 중의 하나다.


아무 생각 없이 싸게 팔길래 사다 놓은 순두부의 유통기한이 까딱까딱한 것을 보고 기겁을 하다시피 끓인 순두부찌개를 두 번에 걸쳐 잘 먹고, 어제는 역시나 마지막 남은 찌개에 카레를 두 스푼 풀어 푹푹 끓여서는 밥에 싹싹 비벼 한 그릇을 잘 해치웠다. 그래서 또 내일부터는 뭘 해다 끓여놓아야 당분각 밥 걱정을 안 할 것인지를 새로 고민해야 될 시기가 왔다. 당신은 참, 나 편하라고 이 귀찮고 번거로운 짓을 몇 년이나 말없이 하고 있었구나. 오늘도 별 수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사진 앞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 10년도 넘은 옛날 일로 순두부찌개 먹을 때마다 사람 놀렸던 건 지금까지도 좀 괘씸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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