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려 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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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어제오늘 연속으로 아주 거하게 늦잠을 잤다. 그가 떠나간 이후 아직 2년이 채 되지도 못했는데 나는 벌써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더 누워 있기가 괴로운' 단계를 이미 완전히 지나버린 것 같다. 그는 서운해할지도 모르겠고 조금은 삐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도 할 말은 있다.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도망가랬냐고.


어제 아침에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열다가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창 밖에, 눈이 아주 소담하게 와 있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눈발이 날리던 풍경이야 올 겨울에 유독 드물지 않은 느낌이고 며칠 전에는 정말 주먹만 한 눈송이가 펑펑 내리는 걸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던 기억도 있는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내려서 쌓이기까지 한 눈은 간만이었다. 이야. 겨울 아직 안 죽었네. 뭐 그런 생각을 했다.


점심을 먹고 뭘 사러 잠시 바깥을 나가면서도 내내 툴툴거렸다. 아직도 내게는 눈 쌓인 길을 걸어 마트에 가다가 보기 좋게 낙상을 한 그날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중무장(?)을 하고 집을 나선 것에 비해 정작 나가본 거리 사정은 걸어 다니기에 그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눈은 어떤 부지런한 누군가가 일부러 치운 것 같지도 않은데도 많이 녹아 있었고 그래서 별로 미끄러질 만한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부터 달고 나온 투덜거림을 조금 머쓱해하며 종종걸음으로 볼일을 다 보고,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 아침이 되자 눈은 낮은 건물의 지붕 및 처마에나 조금 남아 있을 뿐, 사람들의 발길이 직접 닿는 길의 노면에는 언제 왔었나 싶게 전부 녹아버리고 없었다.


나도 모르게 달력을 본다. 이제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2월 말이다. 여느 해라면 닷새 후면 끝날 2월은, 그러나 올해는 그나마 하루 더 버텨줘서 엿새가 남았다. 그러나 그 하루를 가지고 미룰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겨울은 가고 있고, 봄은 오고 있다. 아무리 때늦은 눈이 내려봤자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떠나간 이후 아직 2년이 채 되지도 못했는데 나는 벌써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더 누워 있기가 괴로운' 단계를 이미 완전히 지나버린 것 같다. 그는 서운해할지도 모르겠고 조금은 삐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도 할 말은 있다. 아무리 때 늦은 눈이 내려 봤자 봄은 오고, 내가 아무리 슬퍼해 봤자 시간은 간다고.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도망가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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