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보게'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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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요즘 눈이 많이 나빠졌다. 그런 걸 느끼는 편이다. 워낙에 컴퓨터 모니터 아니면 핸드폰, 그도 아니면 텔레비전 같은 식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그다지 썩 눈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들만 가까이하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이제 나도 노안이 오기 시작할 나이가 돼서 그런 건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좀 서글퍼지니까.


눈이 나빠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주로 발행해 놓은 글을 새로 읽을 때이다. 반드시 올리기 전에 맞춤법 검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올려놓은 글에는 꼭 한두 군데 이상의 오타가 발견된다. '그런 일'을 '그런 알'이라고 써놓았다든지, '모를'을 '무를'로 써 놓았다든지 하는 식이다. 이런 오타들의 특징은 우연찮게도 그 오타난 단어 자체가 어딘가에 있는 말이어서 아마 아직은 미개한 맞춤법 검사기로서는 그 잘못까지는 집어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단 발견한 그 순간에 대단히 낯이 뜨거워지는 것은 사실이어서 나는 '아 브런치 안 되겠네' 하는 눈먼 지청구를 늘어놓으며 잽싸게 그 오타를 고치고 시치미를 뚝 떼곤 한다.


어제 올린, 예의 전기장판 걷는 타이밍에 대한 글도 비슷한 루틴을 밟았다. 내 글은 대개 브런치 메인에 걸리거나 다음의 메인 페이지에 딸려 들어가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대개 조회수가 150 남짓, 하트를 10개에서 15개 정도 받는다. 대충 아침마다 들러서 글을 읽고 하트를 찍어주시는 몇몇 눈에 익은 아이디들에 마음으로나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오늘은 또 어떤 '신박한' 오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그러다가 대번, 첫머리부터 발목을 잡혀 한참을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붙잡혀 있었다. 어딘가 이상한 단어가 하나 있었던 것이다. 일단 맞춤법 검사를 통과는 했다는 말일 테고, 가만있자. 놀라보게? 틀린 데 없는 단어인가?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눈에서 잡히는 단어의 형태가 굉장히 낯설었다. 내가 오타를 발견하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눈인 경우가 많고, 그것은 머리가 글을 읽어 이해하기도 전에 '이거 뭔가 늘 보던 형태가 아니다' 하고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찾아내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낯선 단어를 발견해 놓고도 이게 어디가 이상한지를 몰라서 한참을 버벅거렸다. 그러다가.


아, '몰라보게' 잖아. '놀라보게'가 아니라.


커서를 움직여 '놀'자를 '몰'자로 바꾸고 나니 위화감에 거슬리던 신경이 놀랄 만큼 편안해졌다.


그렇게 무사히 오타를 고쳐 놓고도 나는 한동안 툴툴거리느라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세상에 놀라보게가 뭐야, 놀라보게가. 몰라보게도 아니고. 글 쓰는 사람이 나이 먹으면 제일 먼저 오는 증세가 머릿속을 맴맴 도는 단어가 얼른 생각이 안 나는 것이라던데 나도 이제 그런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점점 서글퍼지고, 그래서 나는 이쯤에서 잘 쓰는 전가의 보도를 꺼낸다. 아, 브런치 안 되겠네. 맞춤법 검사기를 말이야, 좀 좋은 걸 써야지 이게 무슨. 놀라보게라니, 저런 말도 안 되는 단어도 못 잡아내는 맞춤법 검사기가 다 무슨 소용이냐고.


덧말. 방금 쓴 이 글 또한 맞춤법 검사기를 돌렸다가 이 맞춤법 검사기가 '놀라보게'라는 단어를 체크하지 못하는 게 맞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아, 브런치 정말로 안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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