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꽃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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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국화는 워낙에 손타지 않고 오래가는 무던한 꽃이라고 이미 몇 번이나 브런치에 비슷한 예찬론을 쓴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에 어김없는 사실로 판명되었다. 정확히 1월 30일에 나는 역시나 인터넷으로 주문헌 소국 한 단을 받았다. 그리고 그 국화들은 근 한 달을 버티고 어제야 수명을 다했다. 그것도 억지로 더 두고 보자면 2, 3일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었겠지만 후임 역할을 할 알스트로메리아가 도착하기도 했고 너무 오래 그 자리에 꽂아둔 것 같아 이제 그만 보내주기로 마음먹은 것에 가깝다.


별 것도 아닌 생화 한 단을 꽃병에 꽂아 놓는 일은 생각보다 제법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일단 아침마다 물을 갈고, 꽃대 끝을 잘라서 다듬어주고, 너무 무성한 곁잎들을 자르거나 따내야 한다. 날마다 짧아지는 꽃대 때문에 꽃들의 높이도 날마다 달라져 가고, 그래서 며칠이 지나면 경우에 따라서는 꽃병을 바꿔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꽃을 꽂을 때는 대충 꽂은 줄기가 물에 미처 잠기지 않았거나 너무 얕게 잠겨 오후쯤에 되면 줄어든 물 밖으로 나오는 일이 생기지는 않는지도 봐야 한다. 그 와중에 시들기 시작한 꽃이 있으면 주위의 다른 꽃들을 같이 시들게 하기 때문에 따내 줘야 한다. 그리고 일전의 백합처럼, 수술을 제거해 줘야 하는 꽃도 가끔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은 시든 꽃을 가려내는 것이다. 꽃이 시든다는 것은 컴퓨터의 이진법 식으로 0과 1로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다. 꽃들은 제각기 시드는 방법과 시기가 다르고, 바깥 꽃잎부터 말라가는 꽃이 있는가 하면 중간부터 시커멓게 변하는 꽃도 있다. 가끔은 채 피지도 못한 봉오리인 채로 말라버리는 꽃들도 있다. 이런 꽃들을 일일이, 잠도 덜 깬 몽롱한 정신 상태에 일일이 들여다보며 이걸 도대체 시든 것으로 봐야 하는지 조금 더 견딜만한 정도로 봐야 하는지, 그래서 이 꽃을 잘라낼 것인지 아니면 꽃대만 다듬어 도로 꽂아놓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나 같은 꽃초보에게는 여전히 난제 중의 난제다.


국화는, 이런 점에서는 그 난이도가 특히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버티는 기간이 대단히 긴 대신으로, 국화는 제 수명이 사그라들어가고 있다는 표시를 웬만해서는 내지 않는 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은 멀쩡한데 꽃대는 표면이 미끈거리기 시작한다든가 반대로 꽃대는 아직도 상태가 좋은데 꽃은 가운데 부분부터 시커멓게 변해간다든가 하는 식으로 시들어간다. 이번 국화도 그랬다. 이걸 도대체 시들었다고 생각하고 잘라내야 하는지, 그래도 아직은 버틸만한 것 같은데 조금 더 두고 볼지를 가지고 내가 미적거리는 사이 국화들은 하나둘씩 그렇게 시들어갔다. 저들끼리만 있을 때는 잘 모르겠더니 새로 온 알스트로메리아의 생생한 기세를 보고 나니 아 이 녀석들이 더는 버틸 수 없을 만큼 지쳤었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숙연해진다.


무심한 내 눈에 띄지 않았을 뿐 그의 마지막도 이렇게 지치고 힘들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한다. 그런 거라면, 그는 어쩌면 지금쯤 더없이 편안하고 행복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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